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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Jul 30. 2023

#33 덥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John Coltrane 존 콜트레인

<Giant Steps>


덥다 「형용사」 몸에서 땀이 날 만큼 체온이 높은 느낌이 있다.



땀이 나고 숨이 턱 막힌다. 언제나 얄미운 건 더위만큼이나 습도다. 건조하면 태양을 피해 그늘에라도 숨겠는데 이렇게 축축해선 도망갈 데가 없다. 여름이 돌아왔다.


존 콜트레인의 1960년 앨범 <Giant Steps>는 무더위를 닮았다. 앨범 커버의 당차게 악기를 문 얼굴에 격양의 빛이 만연하다. 거인의 발걸음이라는 제목은 성큼성큼 전개되는 빠른 코드 진행에서 따왔는데, 색소폰이 불 뿜듯 휘몰아칠 때면 쏟아지는 음표의 향연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한편 블루스 색 짙은 하드밥 앨범이기도 하다. 마치 여름날을 지배하는 습도처럼 끈끈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그의 야심을 드러내는 곡은 역시 1번 트랙 <Giant Steps>이다.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은 자동차 제로백 실험처럼 정지 상태에서 빠르게 튀어나가길 반복한다. 속도감에 난해함을 더한 독보적인 질주에 드럼도 베이스도 좀처럼 맥을 못 추린다. 아내 이름에서 따온 6번 트랙 <Naima>는 차분히 흐르지만 내밀한 뜨거움을 간직한다. 이지 리스닝 발라드라기엔 눌러 담은 감정이 시종일관 꿈틀거린다. 격정을 누른 서정에 감출 수 없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모던 재즈의 마지막 전성기를 대표하는 앨범 <Giant Steps>와 <Kind of Blue>엔 존 콜트레인이 있었다.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리드작 <Kind of Blue> 녹음에 참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자신이 갈 길을 정한 듯 <Giant Steps> 리코딩을 시작한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코드를 비워 청명한 모달 재즈로 장르의 다음을 개척했다면 존 콜트레인은 화끈한 속주와 분주한 코드 전개를 통해 기존 장르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었다.


앨범 <Giant Steps> 이후로 코드 전개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끝났다. 모던 재즈 연주의 정점이 모두의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왔던 것이다. 우사인 볼트라는 걸출한 인물 이후 100m 육상이 시들해진 꼴이다. 덕분에 존 콜트레인의 연주는 여전히 모던 재즈의 정상에 군림한다. 화상을 입을 만큼 뜨겁고 숨 가쁠 만큼 빠른 색소폰 소리가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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