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해 Nov 23. 2022

우리가 회사에서 연차를 내야 하는 이유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신입시절,  

눈치 보며 쉬지 못했다.


평소 어릴 때부터 나는 눈치를 많이 봤다. 그래서일까.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에도 눈치를 많이 보고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눈치를 많이 본 것은 눈치를 많이 주는 문화도 한몫했다.


"너 집에서 어차피 애 보니까, 대기하고 있어!"

"네. 편하게 연락 주세요!"


불편함이 가득한 대화 속에서도 불편함을 내색하면 안 되는 분위기가 되어버린 이 조직, 이 사회에 속한 나는 하나의 개체에 불과하다. 연차가 많이 남은 후배에게 편하게 연차를 쓰라고 하면서도, 나는 편하게 연차를 쓰지 못하는 선배였다. 그래서 더 과감하게 연차를 냈다.


이지은작가님 작품




꼭 어디를 가지 않아도

나는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그만큼 책임감이 늘어났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내 24시간 중 내가 회사일을 생각하는 시간을 늘렸다. life에 work가 차지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가정에 집중하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있을 때에도 회사 걱정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정작 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에서 내 몸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뭐... 이 정도는 한국에서 회사 다니면 이 정도의 스트레스와 몸이 아픈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뭔가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배가 아파왔다.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상해 가고 있는데, 상처 난 곳이 가려워 더 심하게 바닥에 상처 난 곳을 문지르는 아이와 같이 나의 상처에 상처를 더했다.


'어디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나도.'


이지은작가님 작품

  


가족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산소호흡기다.


급하게 냈던 연차에 우리는 빠르게 쉴 곳을 찾았다. 평소 가지 못했던 오랜만의 호캉스. 아이를 데리고 호캉스를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으니까.


아내와 둘이 여행을 할 때는 서로의 기분을 배려하며 여행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모든 일정을 아이에게 맞춰 여행을 한다.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지만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아이 덕분에 한 템포 쉬어갈 수 있으니까.


아직 옹알이를 하고 있는 아이의 눈을 보면 세상 근심이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웃음 지으면 아이는 따라 웃는다. 그런 아이의 웃음에 나는 무장해제되어 그간의 근심을 덜어낸다. 아이가 그의 언어대로 나에게 이야기한다.


"아빠. 조금 쉬어가셔도 돼요. 사랑해요!"


그렇게 나는 아이 덕분에 숨 쉴 구멍이 생긴 하루를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사가 내 인스타에 댓글을 달았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