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육아하기 위해.
신입시절, 나는 유독 퇴근시간에 눈치를 많이 봤다. 아무리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일부 회사는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쉽게 퇴근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아무리 내 일을 다 끝냈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지금도 100% 당당하게 퇴근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퇴근하려 노력한다.
사실 절대적으로 일이 많아 퇴근하지 못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 일을 한다지만, 원래 5명이서 일하는 조직에서 퇴사, 조직변경 등을 이유로 2명이서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많은 회사들이 채용보다 퇴사에 더 둔감한데, 회사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들에게 동료의 퇴사는 아주 민감한 일 중에 하나다. 그렇게 민감한 부분임에도 회사에서는 쉽게 인원 보충을 해주지 않는다.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적정 인원으로 근무를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정시 퇴근'은 아직까지 완벽하게 편한 느낌은 아니다. 내가 소속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포지션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당당한 정시퇴근' 보다는 '팀원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는 정시퇴근' 이 팀장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거다. 사실 퇴근은 하지만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해서는 충실히 해야 하기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많거나, 팔로우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때에는 집에서 추가적인 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에서 우려하는 자기 몫의 일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퇴근만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있는 선배들과 육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육아는 '도와주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선배중 일부는 '나 때는 손에 물도 안 묻혔어!'라는 말을 자랑처럼 하시기도 하고, 내가 육아하는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요즘 친구들은 참 안됐어!'라고 이야기하시기도 한다.
"너무 육아 많이 도와주는 것 아니야?"
"아! 당연히 저도 함께 해야죠!"
처음 아기가 생기기 전에 한 선배가 '일이 육아보다 100배는 더 쉽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실제로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흘려 들었었는데, 이제 당사자가 되어보니 그 선배의 말이 100% 공감이 간다. 이런 공감도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100% 공감하기가 어렵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육아를 시작한다. 육아는 잠잘 때까지 이어진다. 아이와 잠깐 함께 놀고, 아이를 씻긴다. 아이를 씻기고 나서 몸을 닦고, 옷을 입힌 다음 아이는 나와 함께 저녁(분유)을 먹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면 타임. 쉽게 잠들지 않는다. 겨우겨우 재우고 거실로 나오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 아이 장난감부터 치우고, 아이의 똥기저귀, 그리고 아이가 씻었던 잔해를 다 치우고 나면, 빨래를 한다. 그리고 다 된 빨래를 갠다. 내일 쓸 아이의 젖병과 아이의 장난감을 씻는다. 뭐. 이건 내가 하는 것들이고 아내는 추가적으로 이유식을 만들고, 그제서야 우리는 밥을 먹는다. 설거지를 막 다했는데, 이제 잘 시간이다.
아내의 미팅/교육 등으로 혼자 하는 날이면 더욱더 아내에 대한 고마움 생각이 든다. 내일 1시간 먼저 출근하더라도, 근무시간 내 최대한 일을 다 끝내고 기를 쓰고 퇴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바짝 든다. 그러다 갑자기 잡히는 회식, 돌발 업무로 제 때 퇴근을 못하게 되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이 참 힘들다.
많은 이런저런 사정이 있겠지만, 결국 부부가 육아는 함께해야 한다.
가끔 회사에서 업무시간에 30분씩 담배 피우고, 핸드폰으로 주식하고, 회사 내부에 아는 사람과 이야기하러 놀러 다니면서 퇴근시간 종 칠 때부터 일을 하는 동료가 있다. 너무 당연한 듯이 업무 외의 시간에 전화를 걸어 업무를 하고, 꼭 본인이 하는 업무를 저녁 9시~10시에 전체 메일을 보내 동네방네 자신이 9시까지 일했음을 알리는 케이스다. 그 동료의 결혼 유무를 떠나, 함께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과거 야근이 미덕인 사회로 회귀하게 하는 존재와 함께한다는 점이다.
결혼을 하고 내 아이가 생기면서 업무시간 내 업무 집중도는 더 높아졌다. 내가 업무시간에 업무를 반드시 끝내야만 퇴근 후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사실 제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아직까지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나도 업무와 관련해서 필요하다면 개인적인 시간을 더 할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아이라는 존재가 나를 야근이 미덕인 회사에서 나를 구출해주었다. 퇴근 후 아이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면 내 결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아이는 미소와 함께 나에게 그의 언어대로 이야기한다.
"아빠, 바쁜 시간 쪼개서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나는 오늘도 어떻게든 제 때 퇴근하기 위해 업무시간에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