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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써머 Oct 14. 2020

편집되지 못한 마음. 우리가 되지 못한, 우리

오직 내가 쓴 글만이 나를 위로한다 - 글쓰기로의 수렴

계속해서 글을 쓴다. 할 일이 쌓여 있는데도 글을 쓴다. 쓰지 않고는 울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고, 하고 나면 반드시 기분이 안 좋아지는 생각을 억제할 수 없다. 그래서 또 어쩔 수 없이 쓰게 된다. 정리되지 못하고 아무도 관심도 없는 이 답답한 마음을 꾸역꾸역 활자화하지 않고는 못 견딜 지경이다. 글을 쓰는 동안은 마음껏 그를 생각할 수 있으니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실컷 떠올리고 괴로워하고 그리워할 수 있으니까. 그때의 우리를 돌이켜보고 가정해볼 수 있으니까. 우리에게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일주일만, 딱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그런 무용하고 무력한 상상을하며 마음껏 아까워할 수 있으니까. 그래 맞아, 나는 지금 좀 괴로워. 모두가 내게 잊으라고 해. 괜찮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그런데 나는 좀 슬프고 싶은 것 같아. 누구를 탓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아무도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아는데도 그냥 누구에게라도 나의 이 심심하고 해로운 원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는 내가 되는 것 같다. 낮 동안에는 밝고 상냥한 사람으로 살다가, 밤이 되면 약하고 우울하고 부정적인 내가, 더 바보같은 내가 됨으로써 더 깊숙한 곳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 같다. 글을 쓰면 무언가 턱 막힌 듯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고, 그러다 눈물을 한 방울이라도 떨어트리면 마음이 한결 개운해진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반복해서 읽는다. 나를 위로하는 건 오로지 내가 쓴 글뿐인 것만 같다.


수신자를 잃어버린 편지. 시작되지 못한 마음을 위한 인사. 토해내지 못한 울음에 대한 조문. 오직 쓰는 사람의 카타르시스만을 위한 활자. 글쓰기가 아니었으면 나는 비빌 데 없는 이 마음을 어디에 뉘였을까.



"나중에 꼭 좋은 드라마를 만드시길 바랄게요."



내가 그에게 보낸 카톡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울컥한다. 나중에, 꼭, 좋은, 드라마를, 만드시길 바랄게요, 하나하나가 진심인 말들. 정말로 그런 멋진 일을 해내면 좋겠어서, 그 깊숙한 꿈을 내게 말해준 게 고마워서, 그래서 혼자서라도 그 꿈을 응원해줄 수 있어 다행이라. 근데 참 희한하게, 이 말을 소리내서 하면 목이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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