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써머 Jun 27. 2024

결혼이라는 생활

불혹을 바라보는 내게 결혼이란

막바지 이삿짐을 싸는 중이다. 드디어 내일이면 이사를 가고, 이제부터는 늘 남자친구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에도 이제는 붙어 있을 것이고, 가족 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그와 나는 이제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의 생활에 스며들 것이다.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합가를 하게 되면 정말 '결혼 생활'이 펼쳐질 테니.


이삿짐을 싸면서 옛날 노래를 들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띵작이라고 생각하는 god 3집과 휘성 2집이다. 중학생 시절 정말 마르고 닳도록 들으며 모든 트랙의 순서와 가사까지 다 외웠었다. 문구점 같은 데서 파는 천원짜리 불법복제테이프였고 음질도 안 좋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대중가요와 함께 있고 싶었다. 오랜만에 god와 휘성의 앨범을 들으니, 그때 내가 이 곡들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가 생각이 났다. 2000년대 초반 나는 중학생이었고, 대중가요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작사가의 꿈을 키웠었다. 대중가요는 내게 가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었고, 내가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추체험하게 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에는 "당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기에 나는 늘 뒤에서 당신을 기다릴게요" 혹은 "정말 사랑하는 당신이 행복하도록 나 그대를 보냅니다" 류의 감성이 유행했었다. 지금 들으면 '사랑이란 서로의 감정이 동해야지 혼자서만 따라다니는 게 무슨 사랑이냐 스토커지', 혹은 '니 감정만 중요하냐' 하면서 별로 안 좋아했을 텐데, 당시 미디어는 그런 사랑을 꽤 아름답게 그렸었고, 나 역시 서로 좋아하는 것보다 짝사랑이 더 절절하고 특별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연애는커녕 제대로 된 짝사랑도 해보지 못한 쑥맥이었다. 짝사랑도 해보지도 못한 이유는 아는 남학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닌 학교는 남녀가 분반이었고, 같은 학원을 다닌다 해도 남학생들과는 늘 내외했었기에 나는 누구를 좋아하고 자시고 할 수도 없었다. 남학생을 향한 연정 같은 감정보다는 예쁘고 똑 부러지는 동성 친구를 보며 느낀 질투와 부러움이 더 익숙했으니까. 아무튼 그런 쑥맥+대중가요 덕후가 휘성의 <안 되나요> 같은 노랠 들으면서 사랑의 감정을 이해할 리 만무했겠지만 놀랍게도 나는 사랑의 감정을 알 것 같았다. 내게는 이런 가슴 아픈 사연따위 없었지만 꼭 내가 이별을 한 것 같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때 나는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누군가를 절실히 짝사랑해보고 싶다거나 시린 이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경험을 실제로 해보고 '가요에서 말하는 감정과 같은지'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땐 작사가를 꿈꿨으니 '그런 경험을 하면 나도 그런 가사를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정말 순진하고 허무맹랑한 생각도 했었다. 


근데 그때 들었던 god 3집과 휘성 2집은 조금 다른 감정을 들게 했다. 지고지순한 남자들의 순애보적 노래만 들었던 내게 god의 <장미의 전쟁>이나 <사랑이 영원하다면> 같은 노래들은, 뭐랄까 사랑의 염증이나 싫증을 느끼게 한 것이다. 좋은 감정에서 시작했던 관계가,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휘발되자 소음을 내기 시작했을 때. 이런 노래들은 그때까지 내가 (대리)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대중가요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솔직함 혹은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 후에 접한 휘성의 2집은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마 중간중간 <Interlude> 같은, 이들끼리 대화하는 장면들이 있어서 더더욱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같다. 휘성 2집의 유명한 곡들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타이틀곡 뒤에는 여자한테 들이대다 까이는 노래, 자기는 누구든 꼬실 수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노래, 여자친구의 바람 현장을 목격하고 따지는 곡 등이 있었던 것이다. 이게 또 신선했던 게 연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닌, 혼자 급발진하거나 스스로를 추켜세우는 노래들이라 재밌었다. 리드미컬한 멜로디에 이런 세련되고 자유로운(?) 가사가 붙으니 아주 찰떡이었고, 대중가요를 통해 세계를 봤던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남자들의 세계(?)를 알아버린 것이다. 뭐, 물론 그때든 지금이든 다양한 감정과 관계가 있었을 테지만, 당시 유행은 순애보였으니까. 아무튼 그때 음악을 들으니 지금은 다른 감상이 들기도 하고, 그때의 나를 떠올릴 수 있어 꽤 즐거웠다. 


중학생 때 나는 결혼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지만 '생활'이라는 생각은 못 하고 '결혼' 그 자체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남녀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이벤트 같은 프로포즈를 받고(가령 야구장 공개 프로포즈 같은), 그 로맨틱한 현장의 한가운데서 yes를 외치는 모습이 꼭 있을 거라 생각했다. 프로포즈와 결혼, 그 이후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서른이 훌쩍 넘은 내게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 내게 '결혼'이란 서로의 불운을 나눠 갖는 것이다. 상대가 불운한 일을 겪을 때 그 짐을 나누어 갖고, 내가 몸이 아플 때 상대에게 의지하며, 우리 앞에 처한 답답하고 속상하고 억울한 일들을 함께 처리해나가는 것. 나의 불편한 기분을 상대에게 함부로 쏟아내지 않기 위해 스스로 감정을 추스려야 하는 것, 상대의 언행에 상처받더라도 차분이 대화를 청해야 하는 것.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를 하는 것. 가끔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생했다거나 고맙다는 말이 더 중요한 것. 서로의 잘못을 들추지 않고 대신 우리가 만들어가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묻는 것. 손으로 등을 쓸어주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내가 바라고, 만들어가고 싶은 결혼의 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생리증후군 - 두통, 방치하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