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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태 Mar 09. 2022

'개똥'보다 중요한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을 만났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작가가 어릴 적 외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외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지행합일의 중요함을 ‘옛날 이야기’로 들려줬다.      

 

옛날에 서당선생이 삼 형제를 가르쳤겠다. 어느 날 서당선생이 삼 형제에게 차례대로 장래희망을 말해보라고 했겠다. 맏형이 말하기를 “저는 커서 정승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선생이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그럼 그렇지”하고 칭찬했겠다. 둘째 형이 말하기를 “저는 커서 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겠다. 이 말에 서당선생은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짓고 “그럼 그렇지, 사내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 했겠다. 막내에게 물으니 잠깐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했겠다. 표정이 언짢아진 서당선생이 “그건 왜?”하고 당연히 물을 수밖에. 막내가 말하기를 “저보다 글 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또 저보다도 겁쟁이인 둘째 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소리 치니 또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하니 서당선생이 일그러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겠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하고.      


옛날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야기에서 쉽게 눈에 띄는 점은 막내의 명민함이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교훈은 막내의 명민함이 아니리라. ‘버럭’하는 선생으로 이야기를 끝낸 의도가 있다. 외할아버지는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당부를 덧붙였다.      


“세화야, 네가 앞으로 그 말을 못 하게 되면 세 번째 개똥은 네 차지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이야기 전개상 세 번째 개똥은 선생의 몫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 막내는 선생의 윽박질에 기가 눌려 마지막 개똥의 주인을 답하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지식인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주려고 했던 것이다. <홍세화의 공부>에서 작가는 지식인으로 살아가면서 외할아버지의 이야기 속 세 번째 개똥을 먹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후 작가는 외할아버지가 이야기로 전해주려 했던 교훈에서 한발 더 들어가는 성찰을 한다. <홍세화의 공부>에서 세 번째 개똥만 생각하고 어떻게든 개똥을 안 먹으려고 했고, 적어도 덜 먹으려고 했다는 작가는 언젠가부터 ‘아, 내가 처음부터 막내하고만 동일시를 하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지식인으로 살아가면서 성역 없이 타인을 비판하기에 앞서 정작 본인은 비판 대상보다 열심히 공부했는지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이야기 속 첫째 형과 둘째 형을 타자화하고 경멸했다는 반성에까지 이르게 된다.      


남을 비판만 하기는 쉽다. 비판을 가하는 목적이 단순히 타인을 무시하거나 경멸하기 위한 경우가 그렇다. 진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판은 그래서 어렵고 오래 걸린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꼼꼼히 점검해보는 일은 물론, 비판 대상을 타자화가 아닌 동일시해보는 노력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더라도 비판에 앞서 그와 진심 어린 대화를 시도하는 수고가 중요한 이유다. 

혐오 발언에 대한 날 선 비판이 문제 해결보다 갈등만 부추기는 꼴이 되기 쉬운 이유도 여기 있다. 그래서 커밍아웃한 유튜브 김철수씨의 인터뷰 내용이 와닿는다.      


"소수자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표현이 무례하고 과격한 건 제가 당사자니까 느낄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저런 논쟁에 대해, 제가 (성소수자) 당사자라서 할 수 있는 말을 책에 꼭 쓰고 싶었다. 예컨대 동성애 커플에게 '누가 남자 역할이고, 누가 여자 역할이냐'고 질문할 때, 제가 불편한 건 이 질문이 무례한 것보다 그 질문이 무례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보는 거다. 유튜브 활동하면서 호기심에 쓴 시청자 댓글에 누군가 격하게 반응해 싸움으로 번지거나, 원글 작성자가 죄송하다며 삭제하는 경우를 수년 동안 봐 왔다. 그런 '차단'이 옳은 건지 모르겠다. 질문 의도가 뻔히 보이는 혐오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 상황을 설명해주면 된다. 내가 상대보다 위라는 듯 가르치려고 들면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아직 돌이 안 된 아들이 조금 더 크면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들려줬다는 ‘개똥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이야기를 끝내고 외할아버지와 같은 말도 덧붙이려고 한다. 그리고 이 한 마디를 더 할지 말지 고민해볼 테다. 나중에 아들이 스스로 깨우칠 수도 있기에.  

“아들, 그런데 개똥을 건네주기 전에 큰 형과 작은 형에게 왜 정승과 장군이 되고 싶은지, 선생은 왜 흡족해했는지 물어보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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