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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24. 2021

B형 간염으로 쓰러지던 날

야망청년은 그때 죽었어요

대학교 다닐 때 야망 좀 있는 청년이었어요. 꿈을 꾸면 뭐든 될 수 있다. 자신만만했죠. 학생 신분인데도, 학원 여기저기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알바로 학원 강사를 했는데, 저 때문에 수강생이 교실을 꽉꽉 채웠거든요. 성적은 별로 못 올려주는데, 재미는 확실했으니까요. 쇼도 보고, 학원도 가고. 이게 저의 좌우명이었어요. 졸업도 안 했는데, 잡지사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죠. 편집장님은 졸업하고 꼭 같이 일하자며, 저를 예뻐하셨어요. 무슨 소리! 공중파 방송국에 들어가서 드라마를 만들 겁니다. 대기업도, 교직도 다 눈에 차지 않았어요. 오로지 공중파, 그중에서도 MBC. MBC에 들어가서 드라마를 만드실 귀한 몸이었죠. 잡지사 일을 하다가, 하루는 몸이 너무 피곤한 거예요. 쓰러질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도 얼굴이 너무 안 좋다면서, 빨리 병원을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B형 간염입니다. 간수치가 너무 안 좋아요. 입원하셔야 해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간염 보균자였는데, 그게 발병을 한 거예요. 이런저런 약도, 치료도 차도가 없더라고요. 용하다는 한의원을 갔더니, 간경화는 아직 안 왔다며 담담하게 말하더라고요. 서른도 안 된 사람한테 간경화요? 그때 저는 알았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란 걸요. 일단 신체검사에서 탈락이겠구나. 취업 준비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방송국 준비하던 스터디도 다 그만둬요. 좋아했던 한 학번 선배도 간암으로 서른 즈음에 생을 마감해요. 나의 미래였죠. 간염 환자의 간암 발병률은 35% 전후더라고요.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었어요. 지금이야 일상생활에서 옮기는 전염병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때는 밥만 같이 먹어도 옮는다고들 했으니까요. 얼굴이 왜 이렇게 못 쓰게 됐냐? 죽을병에 걸렸냐? 이렇게들 물어보면, 웃고 말았어요. 할 말이 있어야죠. 사회에서 격리된 인간이, 쉬쉬하면서 비밀을 감추고 꾸역꾸역 살았어요. 그래서 신체검사가 필요 없는 여행을 하고, 글을 쓰게 된 거예요. 야망이 다 뭐예요? 내 몸 하나 무사하면, 그게 가장 큰 야망인 거죠. 남들은 여행하고, 글 쓰는 저를 부러워 하지만, 이런 삶을 꿈꿔본 적이 없어요. 성공하고 싶었고, 떼돈 벌고 싶었어요. 친구들보다 잘 벌고, 잘 썼으니까, 그 우위를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죠. 자신도 있었고요. 


야망 청년은, 야망이 금지된 청년이 됐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매일 즐겁게 살자. 그게 보약이라 믿었어요. 여행이 매일 즐겁지는 않더라도, 매일 설레기는 하더라고요.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설렘이 되기도 하고요.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그것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설렁설렁, 나를 불태우지 않는 선에서 무언가를 했어요. 그렇게 글을 썼어요. 떠밀리듯 살았어요. 만족해요. 억울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내가 되기 위해서, 이런 삶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오랜 시간 바닥에 가라앉아 있어야 했어요. 춥고, 어둡고, 비릿한 세상에서 자신만만했던 예전의 나를 지우려고 몸부림을 쳤죠. 왜 이렇게 밝나요? 왜 이렇게 긍정적인가요? 그게 다 저의 비타민 C고, 보약이니까요. 평생 투병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언제 죽어도 덜 억울하려면 지금 웃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너무 거룩해지지 마세요. 진지해지지 마세요. 후회도 하고, 엉성하게 사세요. 결국 죽음으로 수렴한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자신의 허물도 안아 주세요. 아무것도 아닌 걸로도 재밌게 사세요. 한 번뿐인 삶이라는 건, 아주 중요한 단서예요. 단 한 번 사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잘 살고, 못 사는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우린 그저 이 순간을 감지하고, 반응하다가 죽는 거예요. 세상의 기준이, 자신의 기준이 되면 결국 나는 없어지고 말더라고요. 내가 웃을 수 있고, 내가 흡족하면 된 거예요. 자기만족이, 세상이 내게 주는 엄지척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아셔야 해요. 저도 이제야 그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프지 않았던 저보다, 아팠던 제가 소중해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살아 있는 삶을 사세요. 죽으면, 어쩔 수 없이 죽음 안에 머물 테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공짜가 없어서 좋아요. 내가 노력한 만큼, 아픈 만큼 얻는 게 있어요. 성장해요. 그 귀한 가르침을 세상에 내놓으며 살고 싶어요. 그래서 매일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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