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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29. 2021

외모 지적은 무죄일까? 그런데 그게 웃겨요?

상처를 받았다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만

-코미디언 이윤석 씨랑 똑같이 생기셨어요. 호호호 


주연급 연기자랑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어요. 아는 형이 셰프였는데, 밥 해줄 테니까 집으로 오라더라고요.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어요. 맞더라고요. 연예인들은 실물이 예쁜 경우가 많아요. 입체적으로 생겼거든요.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가 어디서나 눈에 띌 수밖에 없겠다 싶죠. 


-이런 말 해도 되나?


그 여배우는 이 말을 먼저 꺼냈어요. 그리고 이윤석 닮았다며 하하호호. 제가 얼마나 뒤끝 쩌는, 자격지심의 화신인 줄 이 톱스타는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 말 해도 되나?'로 시작하는 건 뭔가요?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 알기는 아는 거죠? 그렇게 말하면, 누가 하지 말라고 할까요? 무척이나 폭력적인 화법인 건 아세요? 참고로 저는 코미디언 이윤석에게 전혀 악감정 없어요. 여배우와 나는 모르는 사이니까, 조금은 어려워하는 게 편하지 않나?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에요. 자주 보고, 편해졌을 때 그런 화제는 얼마든지 웃어줄 마음 있어요. 이미 계급의 위아래가 정해져 있고, 내가 아래라 이건가요? 사실 외모 화제는 흔하죠. 누구 닮았다로 시작하는 대화는, 전 세계 공통이기도 하고요. 닮았다는 것까지 눈치 보며 이야기해야 하나? 그렇게 반감을 가지실 분들도 많을 줄 알아요. 깊이 생각 안 하고, 툭 던지는 말인 것도 알고요. 그렇게라도 말문을 트고 싶은 거죠. 제가 생각해도 멋지다고 생각했던 남자 연예인과 비교했다면, 아이고 좋아라. 원래부터 팬이었어요. 이러면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겠죠. 


이번엔 다른 모임이었는데, 그땐 남자 배우였어요. 주연급까지는 아니고요. 다큐멘터리 PD, 남자 배우, 남자 가수, 저, 그리고 다른 방송 스태프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어요. 


-PD님은 얼굴이 무기잖아요. 남자들이 절대로 함부로 못해요.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PD가 여자였어요. 저처럼 눈치 빠른 사람은 알죠. PD의 얼굴에서 경련이 일어나는데, 그 배우는 살판났더군요. 자기 이야기가 먹혔다 싶은지, 목소리가 점점 커져요. 비아냥 개그 코드는 일단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자주 구사해요. 자신은 그런 경험이 없는 상위 포식자라는 거죠.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해요. 가볍게 웃고 넘길 개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죠. 그게 아니라면 권력을 확인하고 싶은 걸 수도 있어요. 나는 우월하다. 우월하지 않은 사람과 확실한 선을 긋고 싶은 거죠.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자의식의 밑바닥이 그런 생각으로 다져진 사람인 거죠.


당하는 사람은 무조건 웃어야 해요. 분위기 싸해지면, 자신만 속 좁은 사람, 예민한 사람, 까칠한 사람이 되는 거거든요. 악의가 없는 유머엔, 적당히 넘어갈 줄도 알아야죠. 합의되지 않은 언어폭력을 피해자에게 떠넘겨요. 그런데 악의가 있다니까요. 자신도 알아요. 왜 외모가 화제겠어요? 힘이 세다거나, 숨을 오래 참는다거나, 눈을 남보다 오래 뜰 수 있다거나, 이런 특징은 왜 그렇게 지루할까요? 그런 걸 못 한다고 놀리면, 왜 아무도 상처 받지 않을까요? 그런 것에서 오는 권력은 미약하니까요. 외모에서 나오는 권력은 훨씬 세니까요. 그 권력의 우위를 이 대화에서 누가 가지고 있는가?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 중에 누가 제일 예뻐? 우리 중에 누가 제일 잘 생겼어? 이게 미친 듯이 궁금한 이유가 뭐겠어요? 권력을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서열을 확인하고 싶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가장 큰 거짓말은 '웃자고 한 말'이라는 거예요. 웃음의 질로만 따지면, 이렇게 형편없는 개그코드도 없죠. 객관적으로 전혀 웃기지 않아요. 뒷맛이 쓴 웃음만 남을 뿐이죠. 자신이 그런 외모 지적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남용하는 거라고 인정하세요. 왜 솔직하지 못하냐고요? 하지만 그런 권력은 그 누구에게도 없어요. 그러니 스스로 확보한 권력은 자제하시는 게 어떨까요? 저같이 지질한 사람은 이렇게 험담이라도 하지만, 대부분은 참고, 삭히고, 분해할 수밖에 없어요. 약한 사람의 침묵을 악용하지 마시라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이 순간 내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듣고 싶어요. 보이는 모든 것들을 보고 싶어요. 내 안에 갇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들리지 않아요. 항상 깨어 있고 싶어요. 우주의 질서가 나를 위해 준비한 모든 소리와, 흐름을 하나도 빠짐없이 누리고 싶어요. 


https://brunch.co.kr/@modiano9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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