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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30. 2021

왕따 DNA는 누구에게나 있다

누군가를 몰아붙이고, 제거하고 싶은 가학성에 대하여

우리는 왕따 행위에 분노해요. 폭력이고, 인격 살인이니까요. 그런데 왕따가 없었던 적이 있었나요? 제 기억에는 없어요. 대학교 때는 없었던 것도 같네요. 같은 공간에서 항상 볼 필요가 없어서였을까요?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장시간 생활할 경우에는 왕따는 꼭 있었어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의 힘을 너무나 잘 알고,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짓밟는데 쓰죠. 싸움이 없는 교실이 존재하나요? 싸움이 뭔가요? 갈등 아닌가요? 대화로 풀지 못하고, 폭력이나 말싸움으로 해결하는 게 싸움이죠. 싸움은 서로 비슷해야 이루어지는 거고요. 상대방이 약하거나, 소수파라면 다수의 공격이 집중돼요. 다른 말로 하면 왕따인 거죠.  


학교 다닐 때는 여성스러운 아이들이 공격을 많이 받았어요. 고추 있나 보자. 우리 때의 정서로는 약간 짓궂은 정도의 장난을 쳤죠. 더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난하거나, 더러운 아이들이 놀림의 대상이 됐어요. 남자는 여자의 차마를 들어 올리는 아이스 케키나, 고무줄을 자르면서 키득댔는데,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니까 할 수 있는 장난이었죠. 분명 장난이고, 호감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그런 비슷한 장난이 약한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행해질 때, 약한 아이는 공포심을 느껴요. 벌벌 떨거나, 과민 반응을 보이면 절대로 안 되는데, 당하는 친구들은 그걸 모르죠. 그런 모습을 보려고 장난을 치는 거니까요. 그래서 겁이 많은 이이들은, 먹잇감이 되기 쉬어요. 행동이 굼뜨고, 어설픈 애들이 밥이었죠. 우리 때는 만만한 아이를 '밥'이라고 표현했어요. 밥은 씹어 줘야 제맛이죠. 가해자들이 볼 때, 그들은 꼭 맞을 짓을 해요.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아무도 안 궁금한 걸 질문하거나, 궁상을 떨거나, 자기 반찬 안 뺏기겠다고 머리를 파묻고 밥을 먹거나요. 


군대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사람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수준이었고요. 고문관이라고 하죠.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사고 치는 애들이 꼭 있죠. 저도 고문관이었어요. 심한 경우엔 아예 짬 대우를 해주지 않아요.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돼요. 일도 안 시켜요. 알아서 놀든, 짱 박혀 자든 상관 안 해요. 대신 후임병들의 개무시도 각오해야 해요. 자기보다 어리고, 계급도 낮은 애들이 조롱하고,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척도 안 해요. 인간 대접은 받을 생각도 말아라. 극단적인 굴욕감이 군대 왕따의 목표죠. 아무도 그런 분위기에 딴지를 걸지 않아요. 그게 정의라고 생각해요.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지키는 거니까요. 중간만 하면 되는데, 그 중간을 못했으니 인간 대접을 바라는 게 죄인 거죠. 


회사 생활을 볼까요? 고작 1년 다닌 잡지사였지만, 말을 섞지 않는 두 집단으로 나뉘었어요. 이유는 안 맞는다인데, '재수 없다' 이거죠. 잘난 척이 심한 사람, 편집장에게 노골적으로 아부하는 사람, 뭔가 촌스러워서 같이 다니기 부끄러운 사람, 선배에게 대드는 후배 등 서로가 갖는 이유도 다양해요. 저도 한 집단에 속할 수밖에 없었는데, 중간에서 홀로 고고한 척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더라고요. 


심지어 가족 안에서는 왕따가 없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랑 치앙마이에 갔을 때요. 저는 어머니랑만 주로 이야기를 했어요. 아버지랑은 5분만 이야기해도 싸움이 되니까요. 식당에서 물값을 받는다고, 사장 나와라, 큰소리치시는 아버지. 무슨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온 거냐? 네가 여행사 직원이었으면, 당장 고소감이라는 둥 상처 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어머니랑만 대화하고, 어머니만 모시고 야시장을 다녀오곤 했어요. 아버지가 너무 하셨네. 누군가는 그러겠죠. 하지만 제 입장일 뿐이죠. 아버지 입장에서, 저에게 서운한 건 왜 없겠어요? 이유를 들이대면, 세상 왕따 대부분은 이유 있는 왕따일 걸요? 우리 반 그놈은 왕따 당할 만 해. 이 말을 교사인 친구에게 들었다면 믿으시겠어요? 왕따 현상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라요. 왕따 DNA는 누구에게나 있으니, 자신의 악마성을 두려워하라는 거죠. 못된 새엄마, 새아빠만 주목하지, 자상한 새엄마, 새아빠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 피가 섞였으니, 그나마 참고 키웠다는 걸, 부모가 되어서야 겨우 깨달아요. 우리 안의 가학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왕따 가해자가 될 수 있어요. 내 안의 악마성을 늘 주시하는 것. 그게 균형감을 갖는 첫 번째 조건이 아닐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나에게서 어떤 글이 나올지 몰라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내 안에서 꿈틀대는 그 어떤 것들을 뽑아서 뜨개질을 해요. 그 뜨개질이 글이 돼요. 내게 찾아오는 글을 자각하는 것, 매일 글쓰기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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