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좀 되더라고요. 누가 봐도 막장쇼거든요. '짝'이나 '하트 시그널', 일본의 '테라스 하우스'는 이 프로그램 보고 나면, 볼 수가 없어요. 아이들 장난처럼 보일 테니까요. 그만큼 노골적이고, 거침이 없어요. 비키니 입고, 몸매나 드러내는 선정적 싸구려 프로그램이라고 미리 마음 닫지 마세요. 선정성은 일부 중 일부일 뿐이에요. 저만 믿고 보세요. 선남선녀들의 배신, 욕망, 뒷담화가 아주 질펀합니다. 보실 분들을 위해서 스포는 자제할게요. 제가 이렇게나 예의 바른 사람입니다.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와 비교도 마세요. 인간의 상상력은 현실을 이길 수 없음을 이 프로그램에서 절절히 느껴 보세요. 그런데 어쩌나요?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니까, 호주가 가기 싫어졌어요. 넷플릭스 추천 영상으로 '러브 아일랜드 미국'편을 먼저 봤어요. 수영복 입은 몸매 보려고 클릭했음을 부정하지 않을게요.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끊임없이 새 경쟁자가 투입된다는 거예요. 지루할 틈이 없어요. 아니다 싶으면 갈아타고, 맞다 싶으면 한 침대에서 남녀상열지사 뒹굴기를 시전해요. 미국 편은 호주 편에 비하면 착한 버전이었더라고요. 호주 편을 보고, 호주에 대한 환상이 다 깨져버린 건 어쩌나요? 저 진짜 호주 엄청 가고 싶었단 말이에요.
아직 못 가본 나라라서, 호주에 대한 기대가 커요. 지상 천국이라고들 하더라고요. 가끔 만난 호주 친구들도, 나사 빠진 듯 매력적이었어요. 저렇게 나사 좀 빠져도, 그럭저럭 살만한 나라인가 보다. 만만하고, 설렁설렁한 나라겠구나. 좋은 쪽으로 편견을 갖고 있었더랬죠. 인종 차별이 심하다고들 하는데, 귀에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 거지. 어떻게 바른 사람만 살겠어요? 나한테만 해코지 안 하면 된다. 나는 왠지 환영받을 것만 같았어요. 이 프로그램을 보고, 그런 환상 다 깨졌어요. 호주의 선남선녀들이 나와서 연애하고, 깨지는 이야기가 얼마나 호주를 대변하겠냐고요? 그래서 더 정이 떨어지더라고요. 카메라 돌고 있는데도, 저 정도면 실제로는 더하겠는데. 그 생각만 들더라고요. 미국 편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노골적인 외모 평가질이 만연하더군요.
예를 들면 키 175cm 남자는, 참가한 모든 여자들에게 거절당해요. 키 때문에요.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산만한 성격이 추가로 감점 요인이 되긴 해요. 키를 굉장히 중요시하더라고요. 미국은 키 작아도 근육질이면, 남자로 쳐주던데, 호주는 진짜 자비 없더군요. 키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금발의 푸른 눈은, 거의 외우겠더라고요.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뽑는 우선순위기 금발, 푸른 눈이에요. 서구적 미의 관점이라는 건 저도 알죠. 미국도 그런 면이 있기는 한데, 호주는 그냥 통일이에요. 백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완벽한 미의 상징이다. 호주의 미적 관점은 거기서 전혀 변화가 없는 듯하더군요. 호주에서 타인종은 완벽한 깍두기겠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한 남자 출연자가 토끼 이빨인데, 한 여자 출연자가 노골적으로 씹어요. 한 남자 출연자는 치아가 지나치게 하얀데, 그것도 조리돌림의 대상이 돼요. 숨어서 눈치 보면서 조롱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해요. 출연자들은 고르고 고른 모델이나 모델급 외모의 소유자들이에요. 그런데도 자비 없이 짓밟아요. 토끼 이빨 남자가 화장실에 짱 박혀서 펑펑 울면 말 다한 거 아닌가요? 아시죠? 서양 남자들 우는 거 진짜 치욕으로 생각하는 거요. 직업이 모델이기까지 한 백인 남자가 펑펑 울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그래도 대다수는 착한 사람이겠지. 그렇게 믿고 호주를 가도 되나? 겁이 다 나더라니까요. 백인은 백인끼리, 아시아인은 아시아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어울리는 나라인가? 그런 의심도 살짝 들더라고요. 안 가본 제가 어찌 알겠어요? 막장스럽고, 노골적이며, 선정적이고, 파괴적인 에피소드로 가득한 리얼리티 쇼 하나에 이렇게 호들갑이네요. 그만큼 '러브 아일랜드 호주 1편'은 강렬하고, 완벽해요. 넷플릭스에서 발견한 보석입니다. 다 보시고, 꼭 다 보시고, '러브 아일랜드 호주 출연자 근황'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셔야 해요. 이 프로그램이 왜 완벽한지는, 출연자들의 근황까지 아셔야 이해되실 거예요. 그리고 다시 한번 보세요. 메소드 연기가 무엇인지, 히치콕 감독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소름 돋는 그 무언가를 경험하시게 될 겁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아카데미나, 깐느는 감히 상 줄 생각도 할 수 없어요. 이미 그 레벨을 넘어섰으니까요. 저나 되니까 추천드려요. 여러분은 횡재하셨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나를 씁니다. 그래서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불완전합니다. 그런 모자란 사람의 모자란 글로, 누군가는 위로받기를 바랍니다. 좋은 7월의 첫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