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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30. 2021

안녕, 방콕! 다시 올 때까지 우리 안녕하자

몇 시간 후면 공항으로 가요. 저 안 울어요. 흑흑

짐을 싸고 있어요. 벌써 3년이나 됐네요. 태국 방콕에만 머문 지가요. 보통은 1년에 한국이나 다른 나라를 몇 번씩 다녀오는데, 코로나 때문에 태국을 못 벗어났어요. 길어야 몇 달 가겠지. 그랬던 코로나가 이렇게나 창궐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답답하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배워요. 인간의 분석이나 예측력이, 얼마나 무력한가를요. 코로나는 제 인생에 어떻게 기억될까요? 저보다는 소상공인들이 걱정이죠. 나가는 돈은 있는데, 주 수입원이 막혀 버린 사람들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요? 지금 방콕의 상가들은 묘지와 다를 바가 없어요. 어제 태국의 이마트라고 할 수 있는 빅씨에 갔더니요. 그 안의 초대형 식당가도 대부분 문을 닫았더라고요. 거대한 무덤 같아요. 그 큰 건물들이 불빛 하나 없는 어둠이 됐어요. 마추픽추나 앙코르왓 같은 유적이 됐어요. 이런 방콕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언제가 돼야, 식당 주인들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탈출하는 심정이에요. 외국인 백신 접종 자체가 당장은 힘들 것 같아서요. 60세 이상 외국인만 백신 신청을 받고는 있더라고요. 사설 병원에서 백신을 놔주기는 하는데, 중국 백신을 5천 밧(15만 원)에 맞으라더군요. 이때다 싶은가 봐요. 다들 죽지 못해 사는데, 누군가는 자산 증식 절호의 찬스인 거죠. 사람 사는 곳 다 거기서 거기지만, 자기 뱃속만 불리는 사람들이 얄미운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동안은 자유롭지는 못했어도요. 잘 지냈어요. 호텔들이 말도 안 되는 할인을 하더라고요.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싼 값에 오성급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팔자에도 없는 호캉스도 했네요.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에요. 태국 전체가 웃음기가 사라졌어요. 일일 확진자가 만 육천 명을 넘겼어요. 이만 명, 이만 오천 명도 시간문제라네요. 백 명 이상 사망자가 나오는데, 그것도 더 폭증할 거라 예상하더군요. 태국 사람들 겁 많아요. 확진자가 한 명도 안 나올 때도요. 에스칼레이터 한 칸씩 떨어져서 타기. 지하철 한 칸씩 떨어져 앉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했어요. 겁을 많이 먹을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망자가 쭉쭉 늘어나더라고요. 어제도 백삼십 명이 넘게 사망했어요. 우리나라 사망자가 어제 4명인 걸 보면, 사망률도 훨씬 높기는 하죠. 사망자 통계를 정확하게 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서요. 확진자나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거예요. 유명인들이 활짝 웃으며 병원으로 가서는, 사늘한 시체가 돼서 화장터로 직행해요. 전쟁 한 번 제대로 겪은 적 없는 태국인들이기에, 지금은 공포 그 자체예요. 예전부터 느꼈지만, 태국 사람들은 면역성이 떨어져요. 사소한 소음에도 깜짝깜짝 잘 놀라고, 낯선 향이나 맛에도 민감해요. 태국이란 보호막 안에서, 자신들만 몰랐지, 천국 살림을 했던 거죠. 그 천국의 균열이 시작되면, 수습할 엄두를 못 내요. 약하고, 아기 같은 사람들이 살아요. 코로나는 태국에겐 더 가혹하고,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될 거예요. 


몇 시간 후면 공항으로 가요. 다행히 코로나 검사는 음성이 나왔네요. 면봉으로 코 후비는 검사에 십만 원 넘게 썼어요. 다른 병원은 이십만 달라더군요. 그나마 싼 곳이 십만 원이에요. 사람 일 모르는 거라,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겁도 좀 나더라고요. 확진자가 되면 비행기 못 타니까요. 그러면 그렇게나 좋아했던 방콕이 감옥이 돼요. 사람이 이렇게나 간사해요. 간사한 저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한국으로 가요. 백신도 맞아야 하고요. 한 치 앞을 모르니, 방콕으로 언제 돌아올지 누가 알겠어요? 그래도 꼭 다시 와야죠. 될 수 있으면 빨리요. 더운 공기와 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어요. 꼭 돌아오고 싶은 곳이 있다는 거, 큰 행운 아닌가요? 태국이 저에겐 그런 나라예요. 벌써부터 똠양꿍이, 솜땀이 그립습니다. 그 알싸한 태국맛 보러, 빨리 돌아올게요. 그동안 나도, 방콕도 각자가 안녕하자고 약속했어요. 그걸 말로 해야 아나요?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요? 척하면, 척 알아듣는 사이니까, 다정하게 웃어만 주면 돼요. 손도 안 흔들어 줄 거 알아요. 다시 돌아올 걸 믿는 거죠. 요망한 방콕은, 저를 꿰뚫고 있어요. 밀당도 안 통해요. 


https://blog.naver.com/modiano99/2224475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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