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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Dec 29. 2023

나이 오십에 커밍아웃합니다. 저는 게이입니다.

굳이  이 나이에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

평생 숨기고 살 작정이었다. 


-아우 저 호모새끼, 완전 소름


친구들이 누군가를 그렇게 씹으면, 나도 소름 끼쳐하거나, 웃거나 해야 했다. 그 호모 새끼가 네 옆에도 있단다.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아닌 척 평생 묻어 두면 묻어질 수 있다 생각했다. 게이 친구들 중엔 여성스러운 사람도 물론 있다. 안 그렇게 보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소름 끼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왼쪽 손이 마구 흔들리더니, 걸음이 빨라지시더니, 이젠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도 모르신다. 쌩쌩 잘 타시던 자전거는 세워둔 지 오래고, 목발에 의지해 겨우 걸으신다. 아기처럼 잠만 주무신다. 쌔근쌔근 진짜 아기가 되셨다. 내 커밍아웃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부모님이었다. 그 집 아들은 왜 장가를 안 가나요? 이런 질문에, 여자 안 좋아해요. 남자 좋아해요. 게이라오. 칠십을 한참 넘으신 부모님께 그런 화통한 개방성을 기대하는 건 무리 아닌가? 매일 아들만 생각하시는 어머니는, 혹 아들 흉이라도 잡힐까, 알고 계셨다 해도, 모른 척하실 것이다. 숱한 거짓 알리바이로 아들을 치장하실 것이다. 그게 마음이 아파, 커밍아웃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몇 달 만에 아기가 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생은 짧아도 너무 짧구나. 


가까운 친구들에겐 커밍아웃을 꽤 했는데, 생각보다 홀가분했다. 여자를 좋아하는 척, 그 지겨운 연기를 안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그래서 하는 것이다. 솔직한 숨을 지금부터라도 쉬고 싶어서. 어우, 저 징그러운 호모 새끼. 생이 짧으니, 그런 손가락질의 시간도 짧디 짧으리라. 이 글을 읽는 친구들은 어떤 기분일까? 박민우가 게이인 걸 꿈에도 짐작 못한 그런 친구들 말이다. 잠깐은 놀라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말 것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먹고살기 바쁜 자기만의 시간으로 금세 돌아가게 되어 있다. 


-제 글에 사랑 이야기가 왜 없냐면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서입니다. 


내 여행기에 왜 여자 이야기가 없나? 그걸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많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한다. 사실이다. 나와 엮였던 남자들 역시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게이 중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쥐 죽은 듯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홍석천처럼 유쾌하게 끼를 떨거나, 여장을 한 사람들을 떠올리지만, 사실 대부분의 게이는 평범하다. 애초엔 달랐을지 몰라도, 연기로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 구역질 나는 변태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자신의 정체를 들키겠나? 그들은 당신이 게이를 조롱하고, 혐오할 때 같이 조롱하고, 혐오할 것이다. 섬뜩하지 않나? 대부분의 이성애자들은 자신들이 게이를 판독할 수 있다 착각한다. 게이들은 특정한 행동과 외모를 가지고 있다 확신한다. 당신의 가족 중에, 친구 중에 게이는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그저 침묵할 뿐이다. 연기할 뿐이다. 정체가 들통나면 목숨을 끊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필사적으로 숨길 수밖에 없다. 나는 먼저 내 정체를 까겠다. 세상의 편견과 당당히 맞설 깡다구는 없지만, 까겠다. 편한 숨이 그만큼이나 간절하다.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어졌으니, 나의 글은 밑도 끝도 없이 발랄해질 것이다. 솔직해질 것이다. 친구들아, 나는 게이란다. 이제야 밝힌다. 오랫동안 너희를 속여 왔지만, 미안하진 않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땐 들키면 죽음뿐, 매일매일이 칼날 위의 삶이었다. 나를 축하해 주지 않겠니? 새로 태어났으니, 생일이나 마찬가지다. 투썸플레이스 스초생 케이크 기프티콘 환영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게이이고 싶다.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가는 그 유연함이 좋더라. 함부로 멍청하게 다수가 상식이라 주장하지 않는 나의 조심성이 좋더라. 그리고 혹시 자기를 덮칠까 봐 몸서리 친구는 친구들아, 오버는 정도껏. 나 눈 높단다, 아주 많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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