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부모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부모가 밉다.’ 부모가 싫다.’라는 내 감정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너무 싫은 마음, 너무 미운 마음이 많으면 ‘부모라는 사람’을 극복하기가 어려워요. 미움과 분노에 지나치게 휩싸여 있으면 그들로부터 내가 받은 영향력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알려면, 나 조차도 나에게서 한발 떨어져 봐야 합니다. 그런데 감정은 강한데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면 한발 떨어져 볼 수가 없어요. ‘아, 내가 이런 것으로 인해 이런 영향을 받았구나. 이 영향 때문에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구나. 이런 것들이 나의 마음 안에 자리를 잡고 있구나. 이런 마음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을 이렇게 바라보는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느껴지는 그 감정을 인정한다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내가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해결하려면, 우선 나의 마음부터 인식해야 합니다. 나의 마음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다음에 내 스스로 그 마음을 소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주는 사랑과 자식이 받아들이는 사랑은 다를 때가 있습니다. 부모는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자식은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기도 해요.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굳게 믿고 있다면, 조금 섭섭한 일이 생겨도 잘 넘길 수 있어요. 그런 믿음이 없는 아이들은 부모가 조금만 섭섭하게 해도 크게 분노해요. 부모를 공격자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마음에 충족감을 느끼는 형태여야 합니다.
많은 것은 부모 때문인 것이 맞습니다. 그때를 돌이켜 생각하다가 ‘내가 왜 그랬지?’라고 후회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어른이 되어서야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부모에게서 어이없는 일들을 겪고 부모에게서 끊임없이 상처를 받는 아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릅니다. 안다 해도 제대로 대항할 수 업습니다.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모릅니다.....아직 아이였던 그때의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때 부모님이 그렇게 했더라도,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덜 혼나고 컸을 거야’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은 네 일인데도 네가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네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억울해도 네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
인간에게는 꼭 채워져야 하는 의존 욕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독립적이냐, 의족적이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중요한 사람에게 조건 없이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험, 사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을, 위로가 필요할 때는 사랑을, 위로가 필요할 때는 위로를, 보호가 필요할 때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기본적이고 생존적인 욕구가 바로 의존 욕구입니다. 그런데 이 의존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어른스러워야 했던 아이들은 ‘허구의 독립성’을 갖게 됩니다. 실은 의존적인데 겉으로는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허구의 독립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인생의 모든 것이 일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삶의 모든 것이 다 내가 해내야 하는 책임들인 것만 같죠. 고통이 끝이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보면 매 순간이 그렇지는 않아요. 슬플 때도 있지만 기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지만 편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보살핌이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떤 때는 사람조차 귀찮습니다.
결과가 좋아야 최선이 아니야. 열심히 해도 결과는 나쁠 수도 있어. 좌절이 오더라도 피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거야. 끝까지 겪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마무리가 되지.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 최선이야.
—>500일의 썸머가 생각났다. 이별한 순간 뿐 아니라 그 이후에 그 이별을 극복하는 과정까지가 그 사랑의 마무리(?)라는 교훈을 준 영화.
그녀의 어머니는 결과 중심적인 양육을 했습니다. 이러한 양육 방식에서 자란 아이는 중간 과정이 중요하고, 또한 과정을 통해서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될 수 있어요. 누군가 나를 오해하고 있다면 그건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결과가 바뀔 수 있어요.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서로 의견을 들으면서 갈등을 풀어가거나 조절해 가야 합니다. 조금은 번거롭고 잠시 마음이 불편해지더라도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에요. 그 과정을 지나야 나도 만족하고 상대도 만족하는 결과를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아이는 핵심적인 애착 관계의 대상으로부터 ‘자기 확신’이나 ‘신뢰감’을 쌓아야 합니다. 결과 중심적인 양육에서는 이것을 쌓기가 힘들어요. 부모들은 좀처럼 이렇게 말해 주지 않아요. “너는 열심히 했지만 잘 안 될 때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너는 잘하려고 했던 거니까 네가 옳아.” 아이는 이런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라야 해요. 그래야 ‘이번에는 잘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난 참 괜찮은 아이야.’, ‘나도 이만하면 꽤 멋진 걸’ 이런 생각을 갖게 되거든요. 결과보다는 뭔가를 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부모가 꼭 가르쳐야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자기가 하는 일, 자신의 주도하에 하는 일에 대해 자신감과 자기 신뢰감을 가질 수 있어요.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작은 결정에도 자꾸 나의 마음을 외면하게 될 때, 이때 가져야 하는 생각은 ‘나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람이다.’, ‘나는 대체로 옳다.’라는 겁니다. 우리는 대부분 게다가 지금이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람일 거예요.
성공한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어떤 일이든, 어떤 인간관계든 어떤 과정을 통해서 가는지가 중요합니다. 도달한 결과의 성적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조금 떨어지면 어때요. 우리는 충실하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는 합니다. 우리는 결과 속에 살지 않아요. 과정 속에서 생각하고 선택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나를 느끼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