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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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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mymeyou us Nov 16. 2022

변 혹은 진실

부모가 된다는 것

  


  아빠가 본인이 번 돈을 차나 번듯한 집을 사는 것에 투자하기보다는 먼 훗날 자신이 먼저 죽고 나서의 가족의 평안을 위한 사망 보험금을 들이붓고 있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전해 들었다. 그 말을 처음 듣고 나서 드는 첫 생각은 솔직히, '그럼 얼른 죽던가' 따위의 생각이었다. 나에게 현재 눈에 보이는 이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미래에 오게 될 큰돈 따위가 아니라 당장 오늘의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그러면 나는 아빠로부터의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은 아빠가 죽고 나서 그 돈으로 나의 평온하고 다소 횡재에 가까운 돈들을 펑펑 써재끼는 것뿐이란 말인가?

   왈칵 눈물이 났다.  밥 한 끼 따뜻하게 먹었냐고 질문할 줄도 모르던 투박한 사랑방식을 고집하던 그가 본인만의 최선의 희생 방식으로 사랑한다니, 느껴지지 않았고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던 사랑의 또 다른 실체를 느껴서 마음이 녹았던 걸까. 사랑은 뭘까, 받아들이는 사람이 사랑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사랑은 사랑인 걸까. 그것은 단지 방식의 차이라고 단순한 결론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왜 눈물은 나고 왜 마음이 아프지.


  엄마는 삼수 수능 전날 새벽까지 잠이 오질 않아 자포자기한 마음에 책상에서 엎드려 밤을 지새우는 딸내미에게 따뜻한 물을 받아와서는 족욕을 시켜주었다. 족욕을 하면 잠이 잘 오지 않을까 하며 새벽 3시에 마주한 진심. 여자가 무슨 삼수냐며 나이 운운하며 나의 삼수에 대한 반대와 지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던 사람. 그래서 더 그날의 족욕 물이 따스하고 애틋했나. 그날의 3시간의 단잠은 인생 30년간 잤던 모든 수면 중 가장 개운했다. 언젠가, 사랑은 하는데 그 방법들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날것의 사랑을 베푸는 것에 대해 본인도 답답하고 안타깝다며 눈가를 적시며 말하던 모습에, 나는 사실은 사랑을 가득 채운 것 같기도..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게끔 견뎌내는 인내심을 배우는 것이 부모가 되는 것이라면, 나는 정말이지, 아직 멀었다. 나는 나를 불효녀라는  안에 가두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다. 나는 아빠의 언제나 화가 나있고 날이 서있는 모습을 혐오했으며 엄마의  희생으로 포장된 잘못된 헌신에 진절머리나 했다.  명은  화가 나고  명은  슬프고 참는 관계. 그것이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관계의  모습이기에 나는  한편에 불안함을 가지게 되었다. 가장 처음 마주한 관계가  하필 저따위냐며 폄하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저러고 살까? 저렇게 서로를 지겨워하면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지겨워도 혐오해도 그것마저도 포용하는 것이 부부인 것이라면 그건 철부지인 나는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지 않을까 싶기도... 이해와 혐오를 반복하는 요즘  감정을 오롯이 느끼며 지내는 중이다. 나는 그들을 정말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사랑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향하는 (그것도 부모) 사랑을 의심해야 한단 말인가.  의심조차도 나의 감정이므로 의심을 의심하지 않기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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