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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mymeyou us Jan 27. 2023

두부 심부름

단단하고 커다란 두부 한모 사 와줄래?

말 그대로였다.

엄마가 두부심부름을 시켰다.

"두부    와줄래? 크고 단단한 걸로"

마침 외출할 일도 있었던 터라 (사실 평소에는 투덜거리며 잘 안 하지만)  심부름에 응했다.

"그래 10 뒤에  올게"

볼일을 마치고 마트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보인 풀무원의 '크고 단단한 두부 500g' 집어 들었다. 두부 심부름이 오랜만인 터일까 괜히 전화로    확인하고 싶었다.

  "엄마, 풀무원의 크고 단단한 두부찌개용 사가면 돼?"


  ", 크고 단단한  사와."

  엄마의 목소리는 왜 겨우 이런 일로 전화했냐는 듯한 심드렁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꼭 확인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확인을 마친 후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두부를 꺼내어 놓자마자 엄마가 한 말은

"어? 이거 너무 작잖아, 에이..."

억울했다. 나는 기껏 전화로 확인도 했고, 내 시간을 쪼개 마트까지 다녀왔건만,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들려오는 핀잔에 약간 울컥했다.

"여기 쓰여있잖아. 크고! 단단한! 두부! 전화까지 해서 물어봤잖아. 왜 핀잔이야? 억울한데..."


 번의 옥신각신 끝에 엄마의 눈이 내가   두부의 포장지로 향했다.

"... 정말 크고, 단단한, 두부라고 쓰여있네...? 이거 뭐라  수도 없고 나참ㅋㅋ 이렇게 서로 다르네…
두부 한모에도 이런 정도면 다른 것들을 표현할 때는 오죽하겠어? 아직 알아야  것들이 많구나.”


나도 나름의 억울한 사정이 있었음을 표현해 냈다.  울컥하는 마음들이 가라앉았다. 서로의 한바탕 다름을 확인하고 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틀린  아니라 다르다는 것뿐이니까. “크고 단단하다.” 모호한 표현 대신 ‘1kg 풀무원 상품’이라는 정확한 상품명 해주기를 바라는 나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길 바라는 엄마의 대화법이 이번 대화로  크게 드러났다. 다시 생각해 보면 모든 두부는 크고 단단하다.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히 두부는 크게 단단한데 얘는 왜 이런 걸 굳이 전화로 확인하나 싶었을 거다. 내 입장에서는 포장지에 쓰여있는 ‘크고 단단한’이라는 문구가 중요했고 풀무원이 아닌 다른 종류의 엄마의 선호하는 두부가 있나 하고 확인차 물어본 것이었다. 오해를 풀고 나니 엄마는 그냥 가성비가 좋고 마트에서 가장 큰 두부를 사 오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두부 한 모를 표현할 때도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겪곤 엄마는 막연히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내가 하는 푸념에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대답이 들려오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작은 해프닝이었다. 어쩌면 다들 한 번은 겪을 오해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 실수를 이 정도로 가볍게 풀어낼 여력이 없었다 우리에겐. 아마 추측 건데 서로의 두부가 맞다며 두부와는 전혀 다른 상처들을 헤집으며 악다구니를 질러댔을 것이다. 작은 오해를 가벼운 실수로 마칠 수 있다는 감사함. 오해가 작다면 작은 오해에서 그쳐야 한다. 작은 오해와 실수가 제때제때 그치지 못하고 큰 오해가 되어 밥상을 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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