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의 차종명은 '아침', 누구나 다 아는 그 경차이다. 차를 샀을 당시 너무 좋아서 '아지'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작고 귀여워 딱 알맞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보조석에 타는 사람은 엄마와 남편 딱 둘이다. 조그만 엄마가 탄 다음 커다란 남편이 타면 '아우 좁아!' 하고 뒤로 의자를 쭉 밀어 놓고, 그다음 엄마가 타시면 '아휴 멀어 하나도 안보여!'하고 앞으로 다시 쑥 나오신다. 사람이 타지 않는 날엔 보조석엔 항상 내 짐이 가득!
8년 전 나는 디스플레이 회사에 다녔는데, 기숙사가 멀어 걱정된다고 아빠가 생일에 크게 쏘신 선물이었다. 그것도 풀옵션으로 빵빵하게 채워주셨다. 회사 동기들 중에 제일 먼저 차를 샀기 때문에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차가 나온 당일 전화로 회사 동기 넷을 불러 모아 시승식을 자랑스럽게 했다. 그런데 차를 타자마자 비가 엄청 쏟아졌다. 그래도 다들 신이 나서 끼어 탔다. 아지는 사람이 많이 타면 힘들어하는데, 동기중 100킬로 가까운 친구가 있어서 아지는 '부우웅' 엄청 크게 아이고 힘들어했다. 그 순간 동기들은 겁먹은 얼굴로 모두 잡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각자 매달렸다.
"아오~ 좀 천천히 가!"
"손잡이 잡고 있으면 덜 무섭네, 잡아!"
더군다나 창문이 뿌옇게 변해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보조석에 앉았던 내 룸메이트는 계속 걸레로 창문을 닦아주었다. 그걸 어떻게 없애는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야~ 계속 가야 돼? 우리 다음에 다시 모일까?"
힘들어서 내 룸메이트는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비가 점점 걷히길래 그냥 가기로 했다. 식장산 위의 전망대로, 야경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아 그런데 큰일이 났다. 차들이 뒤에서 빨리가라고 하도 빵빵대는 바람에 당황해서 그만 고속도로로 잘못 빠졌다. 이 차 사기 전에 엄마 차로 운전을 했었지만 고속도로는 처음이라 너무도 당황했다.
"이러다 우리 서울 가는 건가?"
"어떻게 해? 누구한테 전화 좀 해봐!"
다들 운전을 해본 친구가 없어서 난리가 났다. 결국 아빠한테 전화했고, 우회로로 겨우 빠져나왔다. 너무 긴장해서 화장실이 급해졌다. 주변에 보이는 카페에 대충 차를 대고 사정사정하여 화장실에 뛰어갔었다. 모두 너무 지쳐서 목적지 가는 것은 포기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이렇게 멋진 시승식은 망치고 도착하자마자 다들 도망가듯 흩어졌던 기억이 난다.
'아지'는 작지만, 나에게는 내 손과 발과 같은 너무도 소중한 차이다. 벌써 8년간 함께 많은 일들을 겪었다. 남편이랑 결혼 전에 데이트할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남편이 그때 교대 근무로 바빴는데, 얼굴이라도 잠깐 보려면 내가 가야 했다. 어떤 날은 새벽에 만나야 하고, 어떤 날은 밤에 만나야 하는데 항상 잠이 모자란 사람이라 틈틈이 만났다. 내가 차가 없는 여자였다면 남편은 데이트도 못하고 결혼도 못했을 뻔했다. 결혼 전에 남편이 갑자기 발령이 나서 힘든 날이 많았었다. 그런 때 나는 아지를 타고 달려가 달래주기도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됐으니, 아지가 남편을 노총각에서 구원해줬다. 결혼하고는 남편이 술 마시다가도 가끔 데리러 오라고 연락하는데 내가 차가 없는 아내라면 잠도 밖에서 잘 뻔했다. 같이 외식을 하러 멀리 가서도 술을 좋아하는 남편은 내가 차가 없었다면 밥을 맛없게 먹어야 한다. 그래서 남편도 아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시집간 딸은 집에 있는 기둥도 뽑아서 가져간다는 말이 있는데, 기둥을 날라서 가려면 차가 필요한 걸 깨닫고 있다. 결혼 후에 나는 친정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서 반찬을 나르곤 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딸이 따로 살고 있기는 하냐고 놀라서 묻는 정도란다. 엄마는 내가 결혼한 후로 집에 있는 것 모두 가져가서 생활비가 두 배로 든다고 말씀하신다.
"너 가져가라고 국을 두 배로 끓이려니 엄마가 힘이 든 건 알고는 있지?"
매일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다. 나는 그러면 씩 웃으며 국을 열심히 퍼서 집으로 날라 간다. 국과 반찬뿐만 아니라 장도 엄마랑 같이 보게 되니 생활 용품도 가져가고, 저 번에 보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심지어 엄마 나시 티셔츠, 양말까지 신고 여행을 갔었다.
"엄마, 아빠가 아지를 사줘서 이런 것도 가져가게 되고 그런 거지!"
친정에서 걸어서 집에 가려면 두 시간은 걸릴 테니까!
한 번은 나와 남편을 소개해준 친구가 급하게 연락 와서는 도와달라고 했다.
"눈길에 차가 미끄러졌어. 폐차를 해야 한다는데 외제차라 서울까지 가야 해."
이 차로 고속도로 달리는 것은 정말 무서웠지만 우리 둘을 이어준 은인이기에 도와주기로 했다. 고속도로는 달릴 때 옆에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차가 출렁출렁 거리는데, 버스와 충돌했던 기억도 있어서 그런지 오금이 다 저렸다. 네비를 아직도 잘 못 보는 난 앞만 보며 운전을 하고, 친구는 방향 바꿀 때마다 알려주며 도착했는데 너무도 놀랐다. 버스와 사고 났을 때 아지의 모습보다 친구의 차가 너무도 멀쩡했기 때문이다. 차가 많이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외제차라 부속품 들여오는 값이 중고차 값을 넘어, 폐차하는 것이란다. 아지는 그때 차 앞쪽부터 오른쪽 문짝 모두 바꿨는데도 몇 백만 원밖에 안되었는데 엄청 차이가 났다. 새삼 내 차가 아지인 게 감사했다. 경차라서 주차 값도 얼마 안 나왔고, 경차라서 고속도로 통행료도 얼마 안 냈고, 국산차라서 버스를 박았어도 아직도 달리고 있고.
그러고 보니 버스와의 교통사고 이야기가 떠올랐다. 차 산날로부터 한 달도 안되었을 때쯤, 주말에 본가에 왔다가 월요일 새벽에 출근하려고 고속도로를 타러 가는 길목이었다. 1차선에서 무리하게 직진을 하려 했고, 2차선에서 좌회전을 하려던 고속버스와 충돌을 한 것이다. 아, 엄마가 일요일 밤에 미리 가라고 할 때 갔었어야 됐는데... 처음엔 내가 버스를 박았지만 나는 놀라서 그 자리에 섰고, 작고 작은 내 차를 보지 못한 버스는 계속 가던 길을 한참 더 긁고 가다가 섰다. '으드드드득!'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가씨, 내려봐요! 여기서 직진을 하면 어떻게 해! 보험사도 부르고 해야지, 나 시간 없어요!"라고 운전기사가 화가 나서 내리라고 하는데, 두 손 모두 핸들에 붙어서 떨어지진 않고 그 자리에 앉아 벌벌 떨고만 있었다. 경찰들이 도와줘서 내렸고, 울음이 터졌다. 처음엔 너무 놀라서 눈물도 안 나더니, 새 차가 부서져서 속이 다 보이는 걸 보고 안 울 수가 없었다. 범퍼는 땅에 굴러다니고, 차 오른쪽 부분이 찌글찌글했다. 억울한 건 버스에는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버스기사님이 엉엉 우는 나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하셨고 부서진 내차는 경찰 둘이 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빠와 보험사 기사님들이 와계셨고, 고속버스에 가득했던 손님들은 다들 사라졌다. 울고 있던 사이 다른 버스가 와서 손님을 모두 데려갔단다. 모두 출근 중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욕 엄청 먹었을 것이다. 공장에서 차가 나왔어도 겁이 나서 몇 주는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오른쪽에 큰 차가 있으면 식은땀이 난다.
가끔 내가 피곤해하면 엄마가 대신 내차를 운전해 주시는데, 지금도 그럴 때면 끙끙 앓는 소리를 하신다.
"오토바이들 마저 니 차를 무시해서 무섭다 야! 왜 다들 끼어 드는겨"
정말로 여름에 언덕을 오를 때는 에어컨을 꺼야 다른 차와 속도를 맞출 수 있고, 사람이 많이 타면 뒤쳐진다. 엔진 소리만 커서 남동생은
"누나 차는 소리만 들으면 100킬로로 가는 듯?" 하고 놀린다.
그래도 내 아지는 8년 내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게 날 지켜준 고마운 차다. 짐도 날라주고, 출퇴근시켜주며 돈도 벌어주고, 결혼도 시켜주었네. 남들보다 천천히 안전하게만 다니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