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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노노 Apr 21. 2024

from ICN to LHR

런던 1일 차 - 2024년 1월 8일


벌써 일곱 시간째 비행기에 앉아있다. 예정된 비행시간의 꼭 반이 지났다. <솔로 지옥>을 안 보고 있던 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일까. 심지어 온갖 도파민이 난무하는 시즌 2를 처음 보면서도 엉덩이가 아프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긴 시간 비행기에 콕 박혀 좀이 쑤시는 건. 휴가라는 제목을 달고 온전히 홀로 움직이는 일은.


나의 휴가 계획을 들은 모두가 물었다. 왜 영국이야? 그 긴 휴가 내내 런던에‘만’ 있는 거야? 가서 뭐 하려고? 그럴 때마다 항상 그냥이라고 답했다. 십 년 전 어학연수를 마치고 영국을 떠나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곳에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그 약속을 지키기까지 십 년이나 걸릴 줄은 미처 몰랐다고, 줄곧 그리워했었다고, 구구절절 말하기 뭐 해서 언제나 그냥이라는 두 글자로 몽글한 마음을 대변했다.


휴가를 떠나기 전, 긴 공백을 얼마간 메워줄 준비를 해 두고자 분주했다. 그럼에도 매 미팅의 끝에는 ‘특별한 계획 없이 휴가 가요. 거기서도 일할 수 있으니 편하게 연락 주세요’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왔다. 초과 수하물 비용을 지불하기까지 한, 철저한 짐 무게에는 담당하는 프로젝트 대본의 몫이 있을 만큼 떠나기 전부터 부재에 대한 죄책감을 한 아름 안았다.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이게 맞나 싶었다. 그렇게 말할 거면 그냥 서울에 있는 게 여러 모로 경제적인 일일 텐데. 굳이 런던까지 가서 업무를 이고 지고 있는다면, 뭐 하러 돈과 시간을 들여 수고로움을 산단 말인가. 일에서 벗어나 쉬며 충전하러 가는 게 휴가 아닌가. 긴가민가 하는 마음 안에는 두려움이 자리함을 알아챈다. 모든 것이 생경한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하기 겁나는 위구심이다. 나의 부재와 짝지은 빈틈이 거북할 당신을 염려함이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자꾸 주저하게 한다. 그래서 눈 딱 감고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이 모든 상념을 뒤로하고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십 년 만에,

그토록 그리던 영국에,

런던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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