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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노노 Apr 27. 2024

조급함을 인정하기

런던 4일 차 - 2024년 1월 11일

오늘은 또 뭘 하나. 이 고민을 하는 내가 무력하고 별로다. 매일 아침 별로인 자신을 마주하는 건 꽤 아프지만 자진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또 밤 열두 시에 깨어났으나 곧 다시 잠들어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괴로운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시차 적응이 조금씩 되고 있다는 점은 칭찬할 일. 오늘도 어김없이 운동으로 몸을 깨우고 나갈 채비를 한다.


어제의 옵션 중 하나였던 노팅 힐을 가기로 했다. 노팅 힐은 토요일에 열리는 빈티지 마켓으로 유명한 곳이라 주말에 오는 것이 진짜 노팅 힐을 느끼는 걸 테지만 이렇게 한산한 노팅힐도 나름 운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노팅 힐 서점에 바글거리는 인파가 1/5 수준이라는 거. 이렇게 여유 있게 서점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머리가 좀 크고 영화 <노팅 힐>을 이해할 수 있을 나이에 이 영화를 처음 보면서도 되게 오래된 영화라는 감상을 했었는데. 그로부터도 한참 지났으니 이젠 정말 고전영화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요즘 친구들은 전혀 감흥 없는 장소가 되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속상해졌다.


영국 음식은 맛이 없어 우리처럼 식도락을 즐기는 민족은 영국 같은 나라에선 여행의 재미가 확 반감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생선을 좋아해서 돈가스 레스토랑에 가도 생선가스를 주문하고, 햄버거보다 감자튀김이 더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피시 앤 칩스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이곳에 있는 동안 매일 한 끼를 피시 앤 칩스로 먹어야 한다 해도 군말 안 하고 먹을 수 있을 만큼. 이 식당의 피시 앤 칩스가 정말 맛있다고 하길래 부러 찾아왔는데 오길 잘했다. Cod / Haddock 중에 Cod로 선택. 바삭하고, 쫄깃하고, 타르타르소스 없이도 그 자체로 충분히 좋았다. 예약과 웨이팅이 어마어마한 가게인 줄 모른 채 조금 이른 시간에 방문했는데(11:30경) 45분 기다리라고 해서 살짝 당황했으나 혼자 왔다고 하니 작은 테이블에 바로 앉혀 주었다. 쏘 럭키!


식사와 함께 반주를 해서일까? 분명 낮 최고기온은 어제보다 높은 4도인데 온몸에 새어 들어오는 찬 바람을 견딜 수가 없다. 근처 앉아있을 만한 카페를 찾는데 이 나라의 카페는 죄다 테이블이 마땅치 않다. 카페를 찾아 헤매다 발견한 거대한 스타인웨이 매장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해 졌지만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잠깐이라도 저 피아노 앞에 앉아볼 날이 올까. 흐뭇한 상상을 하며 옷깃을 단디 여미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겨우 코스타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 일기를 쓸 요량이었는데 급한 업무 메일이 와서 답장하느라 기존 계획을 철회했다.


원래는 저녁까지 먹고 들어가려 했는데. 에이,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건 다 추위 때문이야! 추위 탓으로 돌리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이젠 서울에도 이층 버스가 있어 어쩌다 이층 버스를 타게 되는 날이면 꼭 런던을 떠올렸다. 그때마다 다시 런던에 가는 날을 애타게 고대하였는데... 지금 여기에 있다. 비록 오래 걸렸을지언정 흘러 흘러 약속을 지키러 와 있다.


버스에 앉아 목적지가 없는 일상의 불쾌함을 곱씹는다. 오늘을 갈망한 마음의 크기에 부응하려는 노력이, 언짢음을 키운다. 이왕 큰돈과 시간을 들여 이곳에 온 김에 다시는 런던에 안 와도 여한이 없을 만큼 모든 것을 겪고 가겠다는 보상 심리가 기저에 자리함을 알아챘다. 분명 금방 다시 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십 년이나 걸렸잖아? 앞으로는 또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함께다. 안달복달하는 마음은 철저한 계획을 말한다. 즉흥적인 충동을 지양한다. 그러나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일상은 조바심의 자양분이다. 마음과는 반대로 펼쳐지는 현실은 조릿조릿하다.


마냥 애틋한 마음 안에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끼어들 틈이 없게 하고자 긴 휴가를 계획하였음에도 조급함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분명 다음이 있다고 믿으면 되는 간단한 이치를 앎에도, 무조건, 지금, 완벽한 순간을 만들려는 욕망이 앞선다. 어른들로부터 두 번의 기회가 쉬이 주어지지 않았던 어린 연호가 장착한 생존 본능이다.


다음은 어떤 자격으로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내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로 했다면 그 자체로 그런 것이다. 조금 불온전해도 괜찮다. 내겐 언제나 다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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