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가에, 한국에선 구하기 어렵단 이유로 영국으로부터 이고 지고 온 시리얼의 마지막 조각을 꺼냈다. 아끼고 아끼면서 애써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나와 런던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듯해 가슴이 아리다. 괜히 휴가를 기록해 둔 글을 뒤적이며 그때의 일상과 마음을 떠올린다. 미루지 않고 매일 기록해 둔 덕에 런던을 떠올리는 지금이 애틋하고 즐겁다. 새삼 기록의 힘을 느낀다. 소박한 하루라도 뒤돌아보면 특별함이 된다. 휴가 일기는 오늘의 나를 위한 것이다.
유독 서울에서는 좀처럼 여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 넉넉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런던에 있던 나는 어떤 면에서 틈이 넓다고 느꼈을까. 퇴근길 버스에서 나만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인가 둘러보니 모두의 마음이 촘촘히 붙어 있다. 이 많은 사람 중 한 명도 빠짐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어쩌면 영국 사람들이 비교적 여유 있다 정의한 건, 모두에게 주변을 살필 틈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 있겠다. 런던의 지하철 안에서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음악도 들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기에 주변 관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지하철 노선표는 어찌나 뚫어져라 봤는지 여행자임에도 노선을 꽤 정확히 외울 정도였다. 상대에게 피해가 될 행동은 미리 조심하고 혹여나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했다면 바로 쏘리를 외치는 사람들. 덩달아 나도 쏘리와 땡큐를 연발하는 매일.
여백이 없는 분위기는 자신을 조바심에 동동거리게 한다. 경쟁보단 화합을 더 우선순위에 배치함에도 자꾸 경쟁의 편을 들어준다. 이제는 마음의 우선순위와 현실의 우선을 일치시키기로 했다. 비교가 기본인 매일에 틈을 벌려 공백을 두면 된다. 출퇴근 버스 속 휴대폰을 집어넣고 창밖 멀리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