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이 불가능한 이유
1994년에 개봉한 <쇼생크 탈출> 주인공 앤디는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간다. 주인공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이내 이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탈옥을 결심한다. 그는 자신이 머무는 독방 벽면에 포스터를 붙이고 그 뒤로 매일 조금씩 구멍을 판다. 탈출 성공.
그런데 이번 셀프인테리어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탈옥에 관한 이야기를 쓴 작가는 숟가락으로 벽을 뚫어본 경험이 없을 것이라는 것. 만약 벽 뚫기에 실패했다면 영화에 그러한 장면을 넣지 않았을 것이고 벽 뚫기에 성공했다면 글쓰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벽을 뚫었다면 손가락이 이미 망가져 있을 테니깐 말이다.
내가 구매한 집은 대략 25년 된 세대수가 적은 빌라 같은 아파트였다. 집 지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아파트가 '대중화'되기 전이었을 테고 빌라, 한옥집이 동네마다 꽤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주거 형태가 한옥에서 아파트로 넘어가는 시기에 한옥 장점을 아파트에 접목시켰다. 내부 바닥과 벽을 몸에 좋은 ‘황토흙’으로 덮은 것이다.
철거를 시작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철거반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현장으로 오라는 것이다. 본인들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고 했다. 장판과 가벽을 뜯으니 짙은 황토흙이 3~ 5cm 두께로 나타났다. 다행히 벽에 붙은 황토흙은 삽으로 툭치니 큰 덩어리가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바닥은 단단하게 굳은 상태여서 삽으로 제거하기 어려웠다.
바닥과 벽에 황토흙이 붙어 있으면 다음 공사가 불가능하다. 흙 위에는 페인트를 바를 수 없으며 바닥을 깔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뒤에 연결된 공사 일정을 미뤘다. 그리고 직접 작은 삽과 못, 망치를 사서 황토흙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대략 10일이 걸렸다. 매일 5시간씩 흙을 파내고 파낸 곳은 물로 닦았다. 25년간 단단하게 굳은 황토바닥은 돌처럼 단단해 쉽게 깨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드릴 같은 장비를 사용해 굳은 흙을 깰 수도 없었다. 바닥에 깔린 보일러 관에 구멍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방에 갇힌 쇼생크 탈출 주인공처럼 천천히 조금씩 구멍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5일쯤 지났을 때는 손목이 아팠고, 10일이 되었을 때는 손가락 마디마디 통증이 느껴져 연필을 쥘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체력은 바닥이었고 정신은 멍했다.
날카로운 작은 도구로 구멍을 뚫으려면 손과 팔목의작은 근육을 반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손을 움직이는 동안 강한 압력과 무게가 손가락 끝 1cm 면적에 실린다. 영화 주인공이 오직 손과 막대기로 벽을 뚫었다면 구멍을 다 뚫었을 때쯤, 분명 손가락이 고장 났을 것이다. 그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과 팔목으로 담장을 넘고 수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철거를 하면 벽 뒤, 혹은 천장이나 바닥에서 오랫동안 숨어 있던 비밀이 튀어나오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집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을 테고, 공간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고치고 덮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마지막 사람, 즉 인테리어 공사를 결정한 사람이 뚜껑(철거)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쇼생크 탈출에 유명한 대사가 있다.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예요. 어쩌면 제일 좋은걸 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작업을 시작한 지 2주째가 되었을 때 걷어낸 흙을 폐기물 봉투에 담았다. 쌓인 흙은 소형 포대자루 12개 분량이었다. 황토흙 철거 마지막날 물로 바닥과 벽을 다시 한번 닦았다. 조금이라도 황토흙이 남아있지 않길 바랐다.
나는 마침내 드러난 회색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팔 벌려 외치고 싶었다. 탈옥 성공. 이것이 진정한 쇼생크 탈출이다!
*인테리어 전체 과정은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69Rgasmt5k?si=ME4pHB9ucFF8jK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