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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칠레 Feb 05. 2017

푼타 아레나스_사색과 성찰

그리고, 창살없는 감옥

푸에트토 나탈레스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을 남쪽으로 달리면, 칠레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합니다. 남미대륙 땅끝마을입니다. 옆나라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가 더 남쪽에 있긴합니다만, 우슈아이아는 티에라 델 푸에고라는 섬남단에 있습니다. 푼타아레나스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마젤란해협이 보이고, 그 너머에 남미 최대섬 티에라델푸에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푼타 아레나스는 일년내내 남극으로부터 세찬바람이 불어오는 칠레 최남단 항구입니다.



2001년 1월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로돌포 아저씨와 붙어 다니고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낯선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와 함께 여정을 계속하는 것은 절대 쉬운일이 아닙니다. 먹고 싶은것, 하고 싶은것, 가고 싶은곳이 다 다릅니다. 혼자 발길다는대로 마음가는대로 움직이는 생활에 젖어 있다가, 배려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저녁 늦게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했습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론리에 나와 있는 호스텔을 찾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운 곳부터 찾아 갑니다. 첫번째, 두번째 찾아간 곳은 우리 둘을 위한 방이 없습니다. 일인용 방이 딱 한개씩만 남아 있습니다. 2인용 방도 없고, 1인용 방이 두개가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일주일간 우정을 함께한 여행 동료인데... 갑자기 이 아저씨가 내 혹이란 못된 생각이 올라옵니다. 세번째.. 네번째... 한 호스텔에서 또다른 호스텔로의 이동이 먼거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온 도시, 자정이 다가오는 한밤중... 이러다 정말 오늘밤 숙소를 못찾을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다가옵니다. 택시를 타고 5번째 호스텔을 찾아갑니다. 혹시 이번에도 없으면 먼저 확인했던, 일인용방 한개씩 남았던 두 호스텔로 찢어지자고 이야기 합니다.

그 사이 그 방들 마져 누가 차지했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불안합니다.


다행입니다. 결국 다섯번째 찾아간 호스텔에 2인용 방이 하나 있습니다. 터미널에서도 도심에서도 제법 떨어진 곳이라 방이 남아 있었나 봅니다.

당시 들고 다니던 낡은 Lonely Planet를 찾아 봅니다. 기억이 전혀 안납니다. 그때는 호스텔에 대한 평이고 모고 다 필요없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그냥 방이 있는지 없는지만 중요했으니... 아마 지도상 가장 멀찌감치 위치한, 호스텔 Carpa Manzano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다음날 시내를 둘러보며 Lan 항공을 찾아 갑니다. 휴가철이라 북적북적합니다. 제법 기다려서 내 차례가 돌아옵니다. "내일 모레쯤 산티아고표 몇시에 있나요?" 한심하다는 표정인가요? 당황하는 표정인가요? 책상 달력을 보여주며, 표를 살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가 꼭 2주 후라고 알려줍니다.


잘못 알아 들은것은 아닌지, 재차 물어봐도 답은 똑같습니다. 하루에 한번뿐인 푸에르토몬트를 찍고 산티아고로 가는 비행기는 앞으로 2주동안은 만석이라는 대답입니다. 정보부족, 준비부족을 자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르헨티나 쪽으로 넘머가면 육로를 통해 2박3일정도 버스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칠레쪽은 다시 배를타고 올라가는 방법뿐입니다. 요즘과는 달리 당시는 대부분 남미국가들이 비자를 요구할때입니다.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것도 비자가 필요하고, 돌아오는 것도 비자가 필요합니다. 비자를 신청하고 다시 찾는데 7-10일 정도가 걸린다 합니다. 고민해 봤자, 별 방법이 없습니다. 혹시 취소되는 항공권이 있으면 호스텔로 전화를 줄수 있냐고 물었습니다만, 이상한 사람 보듯이 봅니다. 일단 현시점에서 가장 빠르다는 그 2주후 표를 구매하고 나옵니다.

 

우리는 다음날 야생 펭귄서식지를 찾아갔습니다. 자연그대로의 황량한 펭귄 서식지를 돌아봅니다. 황량한 모레 둔덕 여기저기 마젤란 펭귄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훨씬 더 예전 호주 멜버른 필립섬에서 해지고 바닷가로 몰려드는 수천 펭귄을 보면서 신기함과 놀라움을 진작 느껴보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훨씬 더 나이를 먹어서 이정도에는 별 느낌이 없어졌는지... 그닥 큰 감흥은 없습니다. 다음날은 19세기에 건설된 바닷가 목재 요새를 찾아갑니다. 영화에서 많이 보던, 미 대륙 개척시대 영국인들이 인디언 거주지역 인근에 세운 목조요새형태입니다.


푼타아레나스 도착 3일째 입니다.

로돌포 아저씨가 떠나기 전날입니다. 근 열흘 가까이 미운정 고운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센토야로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서 근사한 마지막 만찬을 함께합니다. 나중에 바리로체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고, 자기집에서 머무르라고 수차례 당부합니다.

구렛나루가 좀 있어줘야 여행자 포스가 나올텐데..ㅎ. 2001.1. Sotito's Bar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 구경거리라고는 반나절코스 투어 두 곳.

아침에 일어나면 호스텔에서 주는 빵한쪽을 먹고 천천히 시내 광장까지 걷습니다. 바닷가 부두쪽으로 걷다가 마주치는 cyber cafe에 들어가서 와이프에게 온 이메일을 읽어보고, 또 내 일상에 대해서 이메일을 한통 씁니다. 당시 네이버도 없고, 다음도 없고.. 야후 코리아에 들어가서 한국뉴스 좀 읽으며 한시간 보냅니다.


11시쯤 문여는 란항공에 들릅니다. 번호표를 뽑고 앉아서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오면 혹시하는 마음으로 내 표를 보여주면서 더 빠른 날짜로 바꿀수 있냐고 물어봅니다. 잠시 모니터를 쳐다보고 표정없이 답합니다.

"없어"


일주일쯤 지납니다. 이젠 푼타아레나스 골목골목 이름까지 다 외울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의 하루에 한마디도 안하고 보내는 날이 태반입니다. 열흘쯤 지납니다. 여전히 란항공 사무실을 방문합니다. 혹시라도, 하루라도 먼저 이곳을 뜰수만 있다면.. 기대를 담고 문을 열었다가, 실망만 안고 문을 닫고 나옵니다.


이제 내일 모레면 비행기를 타는 날입니다. 이젠 란항공 사무실에 갈 이유가 없습니다. 갑자기 내가 밥을 한번 해먹어보고 싶습니다. 호스텔에서 일하는 두명 여직원한테 내가 점심을 해주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이 둘은 내가 매일매일 란항공 사무실에서 소득없이 돌아올때 마다 그나마 한두마디 격려를 해두던 고마운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할수 있는 요리라고는 희 쌀밥과 닭살 볶음 두가지 입니다.  쌀, 닭고기, 간장, 마늘 등을 사들고 와서 요리를 시작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수준의 요리입니다만, 여하튼 맛있게 먹어줬던걸로 기억합니다. 칠레사람들 평소에 해먹는 요리가 정말 별거 없거든요..ㅎ


아는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매일매일 도시 이쪽끝에서 저쪽끝까지 걷기만 하던 무료한 도시입니다. 그것도 무려 2주동안이나.. 누군가 이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도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튀어나왔을 겁니다.

"푼타아레나스"


괴테가 매일 같은 시간 사색을 하며 걸었기에, 하이델베르그 사람들이 괴테를 보고 시간을 알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 매일 오전 똑같은 시간에 푼타아레나스를 가로 지르던 동양인을 보고 푼타아레나스 시민들이 시간을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ㅎ

지나고 생각해보면, 지구 땅끝마을 푼타아레나스에 갇혀 있던 2주간, 매일매일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천천히 걸으며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인생에 대해서 고민했던 시간입니다.


지루했던 2주간의 시간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막 결혼하고 첫아이를 갖고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온 30대 초반..

깊은 철학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준 의미있는 도시 "푼타아레나스" 입니다.


2007년 12월

   

공항에 내려서 푼타아레나스 시내로 들어옵니다. 이 지겹던 도시를 다시 왔구나 싶으면서도 또 반갑습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행 버스가 출발할때까지 제법 시간이 있습니다.  몇년만에 다시 왔지만, 눈감고도 찾아다닐수 있는 도시입니다.  마젤란 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를 찾아 갑니다. 몇블럭 안된다고 걸어가는데, 천방지축 어린 두녀석들은 이리뛰고 저리뛰고 와이프는 금방 지칩니다. 대략 7년이 흘렀지만, 도시는 그야말로 똑같습니다. 시간은 멈춰있고, 나만 두아이 끌고 쨘하고 다시 등장한 듯합니다.

푼타아레나스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보이는 독특한 모양의 가로수 입니다
전망대에서 포즈잡아 봅니다



2015년 9월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하니 대충 점심식사 시간입니다. 시장을 찾아 들어 갑니다. 신식으로 새로진 건물이지만, 실제로 해산물을 파는곳은 몇 곳 안됩니다. 그것도 냉동 센토야뿐입니다. 대부분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식당으로 가격도 적당히 바가지가 있을줄 알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산티아고와 비교하면 합리적인 가격대입니다.

밥을 먹으며, 남은 시간을 계산해서 동선을 생각해 봅니다. 도심 전망대 올라갔다가, 시내 멘데스 고택을 구경하고, 공항으로 가면 대충 시간이 될것 같습니다.


역시 날씨가 모든것을 좌우합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아얀 구름이 마젤란 해협 위로 떠있습니다. 더할나위 없이 이쁩니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골목 골목이 다 낯이 익습니다.

15년전이나, 8년전이나 도시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전망대를 찾아 갑니다.

전망대 바로 아래 호텔이 하나 생긴것 말고는 똑같네요

이제는 자동입니다. 알아서들 하늘위로 날아 오릅니다.

2015.9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젤란 해협
2007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젤란 해협


다음은 멘데스 고택을 찾아 갑니다.

수많은 이민선과 무역선이 드나들던 시절 거부가 되었던 가문입니다.

화려한 19세기말 부호가 쓰던 가구, 식기 등등 구경한다고 어른들은 신났습니다.


아. 일요일은 문을 일찍 닫는군요.

아이들은 갑자기 신났습니다. 아빠한테 억지로 끌려서 지루한 옛집 구경 할뻔 했는데..ㅎ


중앙 광장입니다.

최초로 세계 일주를 했다는 "마젤란" 동상이 마젤란 해협을 향해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젤란은 세계일주를 하지 못했습니다. 겨우 지구 반바퀴만 돌아 도착한 필리핀에서 현지 원주민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부하들이 남은 여정을 완수함으로써, 세계일주라는 최초 타이틀은 탐험대장 마젤란에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마젤란 해협을 바라보는 멋진 모습으로 땅끝마을 광장에 남아 천세만세 이름을 남기네요.

개척자 마젤란

 

산만한 아이들 주목을 끌기위한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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