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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Sep 09. 2023

8. 한 컷의 인문학

또 요런 인문학 책은 처음이네 

인문학: 인문학(人文學)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로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
 - 서울대학교 교육학용어사전-


    인문학, 정의를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면서 '아, 그 뭔가 추상적이기만 하고 정답이 없는, 실생활에는 하등 쓸모가 없이 뜬구름만 열심히 잡는 학문?' 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요즘 베스트셀러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이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쪽이다. 매우 적나라하다. 나중에 그 책을 리뷰할지는 모르겠지만, 하게 된다면 이 부분은 꼭 얘기를 깊게 써놓고 싶다.) 반대로 어떤 분들은 인문학을 통한 사유를 통해 생이 바뀌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 


   나는 굳이 따지면, 인문학을 바라보는 그 두가지 관점에 어느 편을 들고 싶지는 않다. 황희 정승처럼 너 말도 맞고 쟤 말도 맞다고 하는 편이다. 인문학은 보약같은 면이 있다.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하기에 입에는 쓰다. 쓴 정도가 입에 넣자마자 뱉고 싶고, 이게 잘못 먹으면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로 인문학과의 한 축인 영문과를 다니는 내내 이게 도대체 내 삶의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의미가 있기는 한가 싶었던 순간이 매우매우 많았다. 지금도 인문학이 나의 생계에 도움이 되냐 물으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쓰디쓴 것을 참고 오래 복용하면서, 여러가지 측면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던 20대를 넘어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손톱만큼이긴 하지만 인문학은 비로소 내 삶을 바꾸고 그 가치를 보여주는 듯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깊은 사유가 어렵고 돌아가는 길을 싫어하는 분들을 위한, 내 개인적인 생각에 국내 인문학 책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꼭 아이에게 보약을 먹이기 위해 바로 옆에 사탕을 놓아두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책이다. '이렇게까지 썼는데, 정말로 인문학 책 안 볼거야?' 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다.


   일단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1.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 (사랑, 돈, 자유, 계급, 공공)

2. 그림으로 인문학적인 여러 관점들을 아주 쉽게 설명하여 

3. 주제에 대한 지식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사실 여기 나오는 개념들이 쉬운 개념이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글로만 이걸 풀어냈다면 너무나도 거대한 주제들이다. 그래도 괜찮다. 한 페이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림들과 쉬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의 지도가 만들어진다. 이 책으로 소위 인문학을 "찍먹"한 뒤에, 관심있는 분야가 생긴다면 더불어 여기 나오는 모든 철학자들과 작가들, 종교인, 사상가들의 책도 곁들인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공공'파트 가 이 책에서 제일 생소했지만, 제일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요즘 민감한 PC(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속이 뻥 뚫리는듯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진정한 공동체란 나에게 공적 행위를 기대하는 사회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스스로 '나의 말과 행위에 사회의 명운이 달려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277p.


   이게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PC주의의 시작점이고, 이것을 우리가 기억을 하고 마음에 새긴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자의식 과잉으로 인해 나오는 과도한 PC주의는 조금 사라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말과 행위에 사회적 명운이 달려 있다' 한번 더 곱씹어 보게 된다.  





울리히 벡은 현대의 개인화를 '소비자 의식’과 ‘자기 확신'의 혼합물이라 정의했다. 자기 확신이란 삶의 불확실성을 개인의 소신대로 뚫고 나가고, 비일관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유쾌한 냉소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 35p.



즉, 사랑이란 곧 나와 파트너의 영혼을 함께 돌보며 불완전한 개인에서 완전한 전체로 거듭나는 플라톤적 에로스를 실천하는 일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완전한 전체란 개인이 지워지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성숙한 사랑은 한 사람의 개성이 온전히 보전된 채, 분리와 고립이 극복되면서 그 특성은 온전히 유지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 59p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증여론》에서 북아메리카 원시 부족들이 축제 때 타 부족과 경쟁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인 '포틀라치 polich'를 설명하며 진정한 부의 가지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여기에서 교환되는 것은 단순한 재화가 아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예의 그리고 기쁨이다.   - 130p.



교회가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게 아니고, 과학적 사실 안에 가치가 내재해 있는 것도 아니라면 인간은 어디서 인생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바로 경험과 이성을 토대로 한 개인의 결단, 즉 인간의 의지였다.   - 59p.



이 두 개념은 합성명사로 헌법에 적힐 만큼 친한 사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견제 관계일 때 더 빛을 발한다. 권력의 공평함을 강조하는 '공화'가 상대적으로 다수를 중시하는 '민주'를 견제하지 않으면 민주는 다수결이라는 원리를 방패 삼아 소수를 억압할 수 있기때문이다.   - 252p.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공화주의가 원활히 작동할 때 피렌체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즉,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공적 공간으로 모조리 끄집어내어 법과 토론으로 해소하고, 갈등이 긴장과 발전 그리고 상승작용으로 이어지도록 시민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종족적 공동체가 아닌 시민 의식을 기반으로 한 자유 공동체를 꿈꿨다.  -  286p.



전체주의가 바로 이러한 인간성 상실을 토대로 나타났다는 것이 아렌트의 분석이다. 만약 서로 얼굴을 대면하는 공적 영역이 활성화되었다면 유대인을 차별하고 무참히 학살하는 끔찍한 일이 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통과될 수 있었을까? 나와 남을 함께 생각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체주의가 감히 발붙이지 못할 만한 공동체란 무엇을 의미할까? 아렌트가 말하는 진정한 공동체란 나에게 공적 행위를 기대하는 사회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스스로 '나의 말과 행위에 사회의 명운이 달려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자의식 과잉이나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공화주의가 제공하는 사회적 상상이며, 시민을 위한 최고의 정치적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 2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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