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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Mar 04. 2023

1세대 카공족이 말하는 카페

   나는 어렸을 때 모든 것이 컸다. 키는 물론이요(놀랍게도, 나는 중2 때 키에서 1cm도 자라지 않았다.), 목소리, 제스처까지 모든 것이 큰 편이었다. 왜 학교 다닐 때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었거나, 혹은 본인이 그런 사람이었던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꼭 수업시간에 같이 떠들고, 장난쳐도 내 이름만 불려서 억울한 사람, 본인은 '아니 왜?'라고 생각했지만 나만 모르고 그 이유를 모두가 아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다.


   이런 점이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은 호쾌함과 자신감으로 비친다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학생 때는 고쳐야 할 큰 단점이었다. 기억은 못하지만 내 부모님은 내가 기억도 못할 정도로 어렸을 적 큰 제스처와 목소리로 인하여 ADHD나 자폐를 생각하셨다고 하시니, 그 정도가 심하긴 했나보다. 부단한 노력으로 지금은 어느정도 그 중간을 이제는 유지한다. 허나 천성에 안 맞는 것은 늘 그렇듯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하다. 이러한 답답함이 극으로 치닫는 장소가 학교를 제외하고 딱 두 군데가 있었다. 바로 독서실과 도서관이었다.


     학생 때 이 두 공간을 안 가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독서실은 오래 다니지 않았으나, 도서관은 자주 갔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공부를 오래 하지는 않았다. 한다 하더라도 집에서 공부하다가 답답해서 몸이라도 움직일 겸(당시 내가 가던 도서관은 산 아래에 있었다.) 공부했던 것을 정리하며 머리도 잠깐 식힐 겸해서 가는 목적이 컸다. 내가 거기서 공부를 강도 높게 안 했던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일단,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기도 했고, 남들이 얼마든지 쳐다볼 수 있는 위치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 의외로 신경이 쓰였으며,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마지막이 제일 큰 이유였다.


   내가 다니던 도서관에는 늘 열람실 사용가능 시간 전에 와서 책을 펴놓고 공부하던 여자가 있었다. 나 역시도 당시에는 백수였기에, 시험공부를 한다고 도서관을 그 이른 시간에 뺀질나게 드나들었고 그나마 사람이 적은 오전 시간은 나에게 황금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던가, 하루하루 엄청 인상을 쓰며 날 째려보길래 저 사람은 왜 저러나 싶었는데... 마침내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마주친 그 사람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말했다. 도서관은 다른 사람도 쓰는 공공장소인데, 물 마시는 것도 좀 조심해 달라고 자기가 신경쓰인다고, 책도 좀 살살 넘기고 컵도 좀 살살 내려놔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습관을 알기에 나름 신경써서 슬리퍼도 바닥이 두꺼운 것을 신고 내 나름의 노력을 했었는데 그 사람에게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많이 양보해서 책을 살살 넘겨달라, 컵을 살살 내려달라는 것은 오케이였다. 공공장소니까. 늘 내가 많이 하는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 마시는 소리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당연하지만, 도서관에서 물을 마시는데 약수터에서 물 마시는거 마냥 '캬아~'같은 효과음은 넣지 않았다. 또한, 모든 독서실은 열람실 밖에 정수기를 놓는다. 장담하건대 소머즈 귀라면 모를까, 인간의 귀로 그 소리가 들렸다는 것을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그녀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슝하니 열람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 나는 그 도서관 열람실을 들어가지 않았다. 내 방을 좀 더 공부하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도서관은 앞서 말했듯 머리를 식히는 공간이다 생각하고, 어느 정도 소음이 허락되는 자료실의 어느 귀퉁이가 나의 자리가 되었다. 그러다 가끔 마주치던 그 여자를 보기가 거북하여 도서관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장소를 물색하다가 '민들레 영토'를 발견하였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1세대 카공족이다. 민들레 영토는 물론이거니와, 1999년 이화여대 쪽에 처음 생긴 스타벅스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이때의 카공족은 오히려 지금의 카공족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혼자서 카페에 앉아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면 옆자리 아주머니들의 한숨 섞인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다.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카페에 앉아서 책 보고 있다. 저럴 거면 도서관을 가지.'


   늘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답답함을 느끼던 친구들을 대동했고, 이를 악물고 늘 애써 안 들리는 척 모진 시간을 견뎠다. 도서관에서 그 예민한 사람들을 견디느니 차라리 몸도 내 맘대로 움직이고, 적당히 대화가 가능한 공간에 있고 싶었다. 카페는 친구들과 그날 했던 공부했던 내용과 책에 대해 대화하며 나누고 토론하는 공간이었다. 활기가 넘치고 자유가 보장되는 공간이었다. 사실 카페라는 공간의 기원이 일제강점기 다방과 더 거슬러 올라가서 중세 유럽의 살롱이라고 볼 때, 이곳의 본질적인 목적은 '대화와 생각의 공유'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머니들이 맞았다. 우리는 그 카페에서 외계인같은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옆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본인들이 조용히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셨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오늘 뉴스에서나 보던 요즘 카공족들을 만났다. 마침 그 시절 나와 같이 카페에서 책을 보며 수다 떨던 친구의 청첩장을 받으러 간 자리이고, 즐거운 대화가 오가고, 역시나 내 목소리는 남들보다 조금 컸나보다. 어떤 남자가 오더니 그때 그 여자가 짓던 표정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여기 2층은 공부하시는 분들 공간이니까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즐거운 자리는 갑자기 차가워졌다. 나의 도서관을 앗아간 망령들이 이제 나의 카페까지 침범하는 것 같아서 아주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사소한 언쟁이 있었고, 친구들도 오랜만에 크게 화낸다며 놀랐다. 언제부터 카페가 '공부하시는 분들 공간'이 되었던 건가?


   커피하우스 이펙트, 아늑한 분위기, 혹은 있어보인다는 허영심 등의 이유로 그들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을 선호하는 그 마음, 1세대 카공족으로서 충분히 이해한다. 어떻게 보면 카페 말고는 유럽처럼 워크스테이션이 우리나라에 많은 것도 아니니 환경적으로도 공간이 없어 이곳에 그들이 몰린다는 것도 이해한다. 다만, 1세대 카공족인 나와 그들 사이의 차이가 있다. 우리는 오히려 활력과 대화의 자유를 위하여 소음에 민감한 자들을 피해 카페로 피신해서 온 만큼 주변의 수다와 소통을 인정한다. 심지어 나는 그것을 환영한다. 가끔 내 귀로 우연히 흘러 들어오는 대화는 라디오처럼 편안하다.


   어떤 카공족이 인터넷에 써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카페에서 작업했던 사람들의 예시 중에 프랑소와즈 사강이나 조앤 롤링을 예로 들면서 카페에서 카공족을 상대로 불이익을 줬다면 '해리포터'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같은 작품이 안 나왔을 거라는 글이었다.


   이 말은 사실 조금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조앤 롤링은 이전 BBC 인터뷰에서 카페에서 집필했던 이유를 '아이와 산책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가 카페에서 잠이 잘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고, 프랑소와즈 사강같은 경우 집필구상을 카페에서 하긴 했지만, 그녀에게 카페란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며 재즈를 즐기기 위해, 어떻게 보면 영감을 기다리기 위해 갔던 공간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이 세대의 카공족이 하는 공부는 그런 예술적인, 영감과 관련된 공부라기보다는 사실 기계적으로 외우고 계산하는 공부쪽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런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았는지 우리의 윗세대를 보자. 그런 공부의 끝이라고 평가받는, 지금은 없어진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윗세대가 정한 장소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시끄러운 곳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찰에 가두고 암자에 자기 자신을 유폐했다. 스스로 본인을 유배시킨 것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그런 공간은 생각해보니 카공족들이 그렇게나 얻고 싶어하는 '조용함', '침묵', '고독'을 원없이 얻을 수 있는 장소다.


   이 얘기가 너무 윗세대의 얘기라 꼰대들의 얘기 같아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당신들과 그나마 세대가 붙어있는, 당신들을 위해 도서관을 양보한 1세대 카공족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달라. 도서관/독서실이라는 좋은 공간을 놔두고, 쉬고 싶어서 나온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유치하게 옆자리 좌석에서 떠드는 이에게 눈치주면서 풀지 말라. 다시금 말하지만 카페의 주인은 대화다. 소통이다. 커피를 마시며 영감을 기다리던 공간이고, 친구들과 어떤 주제로 열띤 토론도 불사하거나, 오늘과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도 창밖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가면 불쑥 어떤 감정이 솟아 냅킨에 짧은 글을 쓰던 공간이었다. 침묵과 싸늘함으로 꽁꽁 얼어붙은 그런 날 선 공간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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