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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Jul 17. 2023

5. 보통의 언어들

짧지만 이펙트 있는 책

   에세이(수필)를 좋아하는 나는, 시중에 있는 산문집을 참 많이도 봤다. 그렇게 에세이를 여러권 보다보니 느낀점이 하나 있다. 에세이는 짧고 생활이 묻는 글인만큼 쉽게 읽을 수는 있으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글은 의외로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에 안 남은 글, 기억에 안 남는 책들은 인스타같은 sns의 감성글 한 줄에 혹해서 샀던 것들이다. 물론 그 한 줄들이 삶의 태도를 바꾸는 순간들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게 많지 않았다. 너무 감정만 과다하게 건드리고 남는 거는 없는 그런 글들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처음으로 수필에 빠지게 만든 한국 수필의 고전,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은 정말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김이나의 <보통의 언어들>도 사실은 팬심으로 산 측면이 컸다. 위에서 말한 내가 참 싫어하는 감정과다 에세이 부류에서 벗어난 책이기만 해도 만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 오랜만에 참 수필집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 많았다. 감정에 맞는 이름표가 언어라면, 그 이름표를 제대로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여정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지적이면서도 다정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말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 담긴 다양한 감정과 마음의 풍경, 그리고 삶의 향기와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반대로 나의 둔감했던 단어선택과 생각없이 쓰던 언어생활에 반성을 하게 된다.) 


   저자의 직업은 작사가 겸 방송인, 모두 언어에 민감한 일이다. 이런 직업상 경험을 살려 저자는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복잡한 감정과 관계의 본질을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를 통해 돌아본다. '말맛'이라고 하는 그 묘하게 다른 차이, 우리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의 그 미묘한 차이를 저자는 맛깔나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를 어긋나게 만드는 데에는 감정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고, 비난을 내포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말에는 엄청난 공격성이 존재하며, '속이 보인다'는 말에는 어른들의 경험치에 기반한 자신의 촉을 믿는 오만함이 투영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 감정을 드러내는 언어, 자존감의 언어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보통의 언어를 소개하면서, 그 속에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투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특히, 나에게는 사과에 대한 부분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사과와 용서에 대해 김이나씨 같은 관점으로 내가 바라봤다면, 내가 흘려버린 몇몇 인연들은 내 옆에 아직 있지 않았을까하는 씁쓸한 상념에 빠지기도 했다.    



선을 긋는다는 말은 내겐 '모양을 그린다'는 말과 같다. 다시 말해 '나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야'라고 알리는 행

위가, 선을 긋는다는 의미이다. 사람의 모양은 수시로 바뀌기도 하기에 끊임없는 관찰이 필요하다. 이 섬세한 과정을 퉁치는 말이 '배려'인 것 같다. 그러므로 나와 상대방 사이에 있는 틈은 서로가 서로를 잘 바라보기 위한 것일 테다. <30p.>


“우리는 서로를 실망시키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라디오를 막 시작했을 즈음 무심결에 했던 말이다. 이샛별 작가가 이 말이 마음에 남았는지 라디오 프로그램 SNS 계정에 글귀로 남겼는데, 내가 앞으로 청취자들과 꽤나 깊은 관계가 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말이라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나는, 아니 우리는 모두, 사회성이란 것을 갖추게 되었고 그것은 아주 가깝지 않은 누군가에게 ‘달’처럼 존재할 줄 아는 능력을 포함한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단면을 보여줄 줄 안다는 말이다. 한끗 차이로 예의, 사교성, 가식을 넘나드는 기술이겠다. <11p.>  


★★ 사과를 전장의 백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친 선언하고 나면 모든 게 종결되는 것처럼.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평화인 경우는 없다. 특히 피해를 입은 국가라면 그때부터가 오히려 아픔의 시작이다. 전쟁통에는 생존만이 문제였다면, 전쟁이 휩쓸고 앗아간 모든 것들을 복구해 나가며 겪는 고통이 삶의 일상이 되는 것은 가장 슬픈 풍경이다. 다툼은 작은 의미에서 전쟁과 속성이 같다. 이권이 부딪히고, 신념이 충돌하고, 분노 분출 외에는 방법이 없을 때 우리는 다툰다.  

사과를 하는 쪽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주도권을 갖는 착각을 한다. 물론 사과하는 일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인지 ‘사과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에 심취해서 포커스를 상대가 내 사과를 어떻게 받는지에 맞추기 시작한다. ‘미안하다고 했잖아’라는 말. 이 문장만 봐도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 짜증이 밀려오지 않는가? 그만큼 사과를 하고 받을 만한 일에서 중요한 건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후의 과정인 것 같다.  

사과를 받을 입장일 때를 떠올려보자. 상대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간은 마치 끓는 냄비가 올라간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는 것과도 같다. 더 끓일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로 식지는 못한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때, 흔들리는 동공으로 잔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미안한 줄 알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등등이 단골 대사다. 물론, 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베스트다. 그러나 사과를 하는 입장에서 사과를 받는 태도에 점수를 매길 권한은 없다.  

사과를 받은 사람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 있다. 마지못해 내민 손을 잡아주고, 다시 웃으며 이야기 나누기까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몹시도 무겁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24-25p.>  


돌아가신 나의 외할아버지는 70세 이후로 청력이 많이 약해지셨다. 나중에는 크게 소리치지 않으면 어지간한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가족들이 보청기를 권하자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귀가 잘 안 들리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나는 잘 들리지 않아서 평화롭기도 하다.”  

처음 들었을 땐 그런 말이 어디 있냐고, 아픈 마음을 숨기고 화를 냈지만 이 말은 내게 아직도 각인이 돼 있다. 어쩌면 그때까지도 나이 듦에 대한 나의 주 감정은 혐오나 공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말을 들은 뒤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육체가 약해지는 데에는 분명, 조금 더 신중해지고 조금 더 내려놓으라는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때부터였다. <100p>  


일이 잘될 땐 평소보다 몇 십 아니 몇 백 배의 사람들이 꼬이고 그중에는 내게 해로운 사람이 태반이기에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다는 걸, 나는 안다. <133p>  


모든 일에 있어서 유난히 수행능력이 빛나는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감이 좋은 때다. 감은 영원하지도 않지만 한 번 왔다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시 한 번 돌아왔을 때 그것을 펼칠 기회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그리고 그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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