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을 좀 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다. 그녀가 쓴 수많은 추리소설은 홈즈, 루팡 시리즈와 더불어 나의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준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수사관이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 데에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요즘들어 부쩍 든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아무 지식 없이 '애거사 크리스티'만 보고 집어든다면 신선한 경험을 하게될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듯.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추리 장르가 아닌 장편소설을 여럿 썼다. (아마도 추리소설을 사랑해준 독자들에게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지금으로 따지면 부캐같은 개념이었으리라.) 오늘 읽은 <딸은 딸이다>가 그중 하나다. 또다른 필명이 주는 마음의 가벼움 때문이었을까? 대사 하나하나가 신랄했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망쳤다고 날 미워해요. 그리고 난 내 일생을 망쳤다고 엄마를 미워하고요."
"난 네 인생에 아무 것도 안 했어. 너 스스로 선택한 거야."
"아뇨,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어요. 위선 떨지 마요."
소설 속 주인공인 엄마 앤과 딸 세라는 애착과 집착의 관계 어디쯤에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침없이 관계의 생채기를 드러내고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엄마와 딸 사이에는 특별하고 긴밀한 유대가 있다. 남자들은 알 수 없는 복잡한 심층의 관계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애거사 크리스티는 엄마와 딸의 이 미묘한 관계를 단 한 줄로 정의한다.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
그녀들은 자주 다투고 자주 깔깔대고 한동안 냉전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같이 쇼핑을 하러 간다. 서로의 인생에 자동 개입하고 행복을 간섭하는 존재들. 엄마와 관계가 힘들었거나 여전히 지금도 힘든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엄마가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나의 엄마로만 살기를 바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아프게 공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누군가에게 관심을 두거나 이해해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당신을 염려하여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런 말도 했다.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인간에게는 평생 행복할 수도 있는 시간이 있다."
또 내 인생이 왜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다 엄마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런 말도 있다.
"아무도 남의 인생을 정말로 망칠 수는 없어. 멜로드라마 시늉 말고 감정에 빠지지도 마."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 대목이 있다.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가슴에 품어두고 자식들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의 희생이 고결한 건 단순한 의미에서의 돌봄과 보살핌이 아니라, 매일매일 의무처럼 행해야 하는 고단한 노동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한 번이라도 자기만의 여자였던 적이 내가 태어나고 나서 있었을까?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 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 앞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건 거기서, 자기의 본 모습보다 훌륭해지는 그 순간에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 그리고 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