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동기들 중에서도 죽이 잘 맞는 편이어서, 지금도 종종 연락하는 동기가 있다. 브런치 첫 연재였던 '우주인의 빨간 날들-통영'을 연재할 때 통영에서 처음 만난 친구니, 아마 햇수로는 7년 정도 알고 지낸 소중한 인연들 중 하나다. 늘 회사 소식에 빠른 그 친구에게서 인사내역이 회사 사이트에 올라오기도 전에 연락이 왔다. "결국... 고민을 그렇게 하더니 저질렀어? 진짜 나갈 거야? 못 돌아올 수도 있는데... 거기다 심지어 통영 다음에 강릉? 뭐 바다에 꿀 발라놨어? 다음에는 인천 가지 왜?" 마지막까지 서울을 지키던 통영 출신 멤버들 중 남아있는 마지막 사람이 나간다는 서운함이 회사 메신저에 묻어 나왔다. 참 정이 많은 아이다.
그다음 연락은 서울중앙에서, 서울동부에서 같이 근무하시던 계장님들의 연락이 왔다. 대부분 요지는 "강릉? 갑자기 뜬금없이 왜? 징계 먹은 거는 아니지?"였다. 하기사 송파구, 그중에서 이 문정동이 동네가 좋다고 노래를 부르던 애가 갑자기 강릉지청으로 발령이 났으니, 설마 내 손으로 서울을 나간다는 선택을 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신듯했다. 놀라실 만도 했다. 이런 걱정 어린 연락을 받다 보니 내 서울살이 5년이 그렇게까지 엉망은 아니었나 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결정을 하기 위해 지나온 많은 고민의 시간 동안 사람들과 했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내용은 이거다.
"야, 이제까지 해 놓은 거도 있고, 쌓아놓은 게 많잖아? 가면 다시 또 춘천지검 산하 사람들하고 다시 또 친해지고, 아무리 업무가 유사하다고 해도, 또 처음부터 다시 적응해야 할 거고, 네가 무슨 초임도 아닌데... 잃을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물론, 고민을 꽤나 많이 했다. 답지 않게 아무 이유도 없이 연가를 내고 관사 방에 앉아서 하루 종일 한 손에는 호두 두 알을 할아버지들처럼 굴리면서 가만히 앉아 있던 날도 꽤나 되었다. 까드득 까드득... 호두 굴러가는 소리로 방을 채우면서 이 말도 안 되는 서울 탈출욕구(?)가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해하며 감정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봤다.
의외로 이 욕구, 이 감정의 밑바닥은 단순하고, 무식했다. 그냥 이 서울이라는 공간이, 한국의 표준처럼 되어버린 서울의 문화가 나를 조금씩 질식시키고 있었다. 모든 음식점과 회사들이 밤늦게까지 열려있고, 새벽이 되면 분주하게 갓생이 요즘 트렌드라니 뭐라느니 하면서 하루가 일찍 시작되는 잠들지 않는 도시.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는 북적한 도시. 서로에 대한 걱정과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개인주의'와 '사생활'이라는 견고한 차단막으로 가리며 조금이라도 본인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넘어가버리면 '무례'하다는 말의 창으로 사람을 찌르는데 서슴이 없는 도시. 나에게 서울은 어느 순간부터 편리와 화려함과 세련됨의 도시보다는 그 이면의 각박함과 천박함과 이기심의 도시였다. 심지어 서로의 SNS를 바라보며 비교질을 해대고, 나도 저렇게 살지 않으면 '틀린'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이 이상한 문화에 욕지기가 올라왔다.
그렇게 이 생활에 염증을 미친 듯이 느낄 때 탈출구를 찾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부딪혀서 삶을 살아가고, 내가 보기에 양심에 걸리는 더러운 짓을 안 하고, 내 삶의 주인이 나였던 그때가 필요했다. 모든 생각이 정리되고 나서야 그때가 언젠지 알아냈다. 생각이 정리되고 보니, 무의식적으로 내가 왜 바닷가로 전보신청을 넣었을까 했던 그 동기의 질문과 회사 사람들의 질문에 두루뭉술한 거짓이 아닌 진실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 그래요 잃을게 많으니 고민도 많았죠. 초심... 초심이 필요해서요.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서 마침내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다시 바다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