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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 아래 깔린 수많은 씨앗들

by MinChive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이로 자란 큰 나무들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러나 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드물다. 발자국 하나마다 수백 개의 씨앗이 살아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모두 그다지 가망은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기회를 기다린다. 그 씨앗 중 절반은 모두 자기가 기다리던 신호가 오기 전에 죽고 말 것이고, 조건이 나쁜 해에는 모두 죽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죽음은 이렇다 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머리 위로 우뚝 솟은 자작나무 한 그루 당 매년 적어도 25만 개의 씨앗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제 숲에 가면 잊지 말자. 눈에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라면 땅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나무가 100그루 이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호프 자런. "랩걸(Lab Girl)". 알마, 2017년, 50-51쪽


36년 평생을 살면서 나는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는 착각이었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학생 때 공부를 썩 나쁘지 않게 했다는 점, 그리고 어쨌든 어떤 책이나 영화를 보든 꽂히면 완결까지 달리는 점 등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운이 좋아서'라는 말로 정리가 된다. '운이 좋아서' 선생님인 부모님을 만나 언제 어디서나 배울 수 있었고, 내 고향 부천은 아주 시골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서울만큼이나 번화한 곳이 아니어서 내 시선을 잡아 끌만큼 화려한 무언가가 있는 도시가 아니었다. 남들보다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가 있던 환경이었다. '운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전공을 잘 골라 '운이 좋아' 나와 잘 맞는 전공 교수님이 골라주신 양질의 책과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나는 집중력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라 집중력이 흐트러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딱 대학교까지였다. 나를 둘러싼 울타리가 거둬지자마자 혼란은 나를 덮쳐왔다.


오늘 호프 자런의 "랩걸"을 다시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라면 땅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나무가 100그루 이상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문구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희망찬 메시지로 보였지만, 지금은 이 문구를 보면 어지럽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나무와 다르게 너무나도 짧다. 25만 개의 씨앗을 우리는 다 헤아릴 수 없다. 저자도 말하듯 발자국 하나마다 수백 개의 씨앗이 내 발 아래 있다 한들 '그들은 모두 가망은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기다리다가 신호가 오기 전에 절반 이상은 죽을' 것이다.


이 강릉에 오기 전의 삶이 딱 숲 속에서 헤매는 사람의 모양새와 비슷했다. 너무나도 많은 종류의 업무와, 너무나도 많은 종류의 취미활동, 너무나도 많은 오락거리가 있었다. 새 업무를 배우는 즐거움과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줄 향락이 있었지만 그 무엇도 '집중'하지는 못했다. 운동도 이거 조금, 저거 조금. 책이나 영화도 이거 보다가, 저거 보다가. 그러다 누가 자리에라도 부르면 그 모든 거를 내팽개치고 쏘다니기 바빴다.


강릉에 와서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단순함과 명확함이었다. 생활 반경 안에 할 수 있는 활동 선택지가 많은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노이즈가 된다. 예를 들어 헬스장, 서울의 경우 한 블록에 한 군데씩 있다. 그 안에 있는 기구가 어떻니 뭐니 다 따지다 보면 한참을 비교하다가 '에이, 안 해!'로 끝난다. 이것은 비단 헬스장만이 아니다. 병원, 음식점, 서점, 공연장... 그것이 무엇이 됐든 선택지가 적다는 것은 나에겐 오히려 축복이었다. 고민이 적어지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에 대한 '만약에~'라는 의문이 확 줄어들었다. 별 거 아닌 사소한 차이지만 시간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아 의외로 삶의 질이 매우 좋아졌다. 그리고 생각에 여백이 생기니까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아, 나 이런 거 좋아하네.' 하며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 발 아래 수많은 씨앗들, 물론 그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모두 끝끝내 열매로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인간은 영원하지 않기에 그런 엔딩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다한 정보가 인간의 집중과 몰입의 즐거움을 막는다면, 어쩌면 몰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나만의 무언가를 잘 찾는 능력이 요즘은 정말 필요한 능력 중에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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