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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by MinChive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읽은 작품이다. 생각보다 책의 두께가 그렇게까지 두껍지 않아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만만하게 시작한 책 치고는 책을 덮고 나서 씁쓸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었다.


이 책은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나'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는 전쟁 후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합리주의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독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며, 어린 화자의 성장기와 마을에서 가장 기이하고 이질적인 인물인 좀머 씨와의 몇 차례 조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좀머 씨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늘 이방인이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지팡이를 짚으며 늘 서두르며 길을 떠난다. 아무도 그가 어디에 가는지, 무슨 목적으로 걷는지 모른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좀머 씨는 종일 걷는다. 그의 서두르는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모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폐소 공포증'이나 '전쟁 후유증' 같은 합리적인 용어로 설명하거나 단순한 괴짜로 치부하며,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소설의 중반부는 좀머 씨 이야기 외에, 화자의 유년기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짝사랑하는 소녀와의 만남, 엄격한 피아노 선생님과의 해프닝 등은 순수했던 소년(나)이 세상의 부조리와 좌절을 처음 겪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러한 에피소드 속에서도 좀머 씨는 계속해서 걷는 모습으로 등장하여 소년의 유년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불가사의한 존재로 자리 잡는다. 특히, 소년이 좌절 끝에 자살을 결심하고 나무 위에 올랐을 때, 나무 아래에서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며 빵을 먹는 좀머 씨를 발견하고 그의 지독한 삶의 무게를 목격한 순간, 그 결과 소년이 자살을 포기한 그 장면은 특히 내 마음에 콕 들어와 박혔다.


이 장면 이후 이 책이 어떻게 끝날 지가 참 궁금했고, 책이 생각보다 얇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얇은 두께를 보고 약간은 예상했지만,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좀머 씨가 호숫가에 서서 천천히 물속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이젠 청년이 되어버린 '나'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좀머 씨는 마치 평소의 걷기를 마무리하듯, 삶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나'는 이 광경을 목격했음에도 소리를 지르거나 그를 말리지 못하고 침묵한다. 이후 좀머 씨는 마을에서 실종되고, 사람들은 그의 행방에 대해 무성한 추측만을 내놓는다. 소설은 화자가 평생 이 사실을 비밀로 간직했음을 고백하며 마무리가 된다.


아름다운 삽화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서술하기에 얼핏 동화인 줄 알았던 책의 무게가 무거웠다. 합리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보였다. 생각해 보면 나도, 너도, 우리는 모두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에 비합리적인 존재들일진대 무엇이든 그리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인가? 밀폐 공포증의 어원을 따지는 화자의 아버지나, 심리학적 용어로 그를 정의하려는 어머니나, 전쟁 후유증 때문에 그렇다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런 면이 있긴 하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답답했다. 설명이 안 되는 것을 설명해야 안심을 할 수 있는 습성이 우리 인간의 천성이라지만, 차라리 아이인 '나'처럼 '좀머 씨는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편이 오히려 지금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좀머 씨를 이해햐는 좋은 자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라는 좀머 씨의 외침은 슬프지만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이 한 마디는 좀머 씨의 전 생애를 집약하며, 그 어떤 합리적인 도움이나 동정조차 거부하는 '자신만의 고독'을 지키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내 삶의 무게가 태산을 등에 짊어지듯 무겁더라도,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하려는 현대 사회의 태도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는 사람, 예나 지금이나 보기 힘든 사람이다. 그런 분들은 이미 어딘가에 은둔 생활을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도 하지 않으며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여기에 나오는 어린 화자 '나'라는 소년도 굉장히 흥미롭다. 그는 좀머 씨의 고통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고 나는 생각한다. 짝사랑의 좌절, 피아노 선생과의 불쾌한 경험 등 세상의 차가움과 비열함에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하려 했을 때, 나무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빵을 먹는 좀머 씨를 보며 본인의 사소한 좌절이 참 코딱지만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소한 좌절 너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무게와 고통이 그 눈에 비쳤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이 작품에서 좀머 씨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의 삶의 무게와 고통을 유일하게 깨달은 사람이 되었고, 마지막 좀머 씨의 자살마저도 존중해 줬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무게로부터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걷고 있는가?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고독과 자유를 우리는 어디까지 '그냥 놔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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