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정환 Feb 12. 2018

지역 발전 패러다임의 변화

도시재생스타트업

J-Connect 매거진 3호(2017년 가을호)에 쓴 글입니다.


 지역 발전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 그대로 우리나라는 50여년간 수도권에 인프라, 인재 등을 집중하면서 고도성장을 이루어냈다. 이 기간에 스타트업 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해갔으며, 비수도권에는 중앙정부의 탑다운 주도하에 전략산업 생산 거점 도시들을 만들었다. 우리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낸 이 기념비적 성장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빠른 성장에는 큰 성장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 경제가 고도화되고 중국이 고도성장하면서, fast-follower 전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인구감소 시대까지 맞게 되면서 지역 경제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다. 수도권은 청년들이 지속 유입되기 때문에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방소멸에서부터 시작해서 국가 전체의 위기로 번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러한 시기에 정부가 지역 발전을 정부의 핵심 과제로 삼은 것은 매우 적절하다. 과거 정부도 공공기관 지역이전, 대기업 지역이전, 지역의 재개발을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했지만, 이 방법 역시 한계가 있었다. 공공기관과 이전기업은 고립되었고, 지역의 재개발은 지역의 고유성을 잃게 만들었다. 이제는 연결을 통한 생태계와 재생(Regneration)의 방법으로 지역발전을 도모할 때다. 

 제주도의 최근은 철저한 재개발의 역사다. 2002년부터 국제자유도시 개발 계획을 수립하여 대규모 개발을 진행했다. 그 결과, 첨단과학기술단지가 만들어지고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등 이전 기업을 유치하였다. 국제학교 단지가 만들어지고,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대규모 리조트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에게 이것은 이질적인 것의 ‘이식’이며 '단절'이었다. 첨단과학기술단지도, 국제학교도, 대규모 리조트도 차례로 섬 안에 섬으로 고립되었다. 이렇게 제주도민들에게는 잃어버린 섬, 닫힌 커뮤니티(Gated Community)에 지나지 않는다면 재개발을 통한 변화가 계속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라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제주도는 재개발이 아닌 재생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2015년부터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새로운 연결을 통한 창조의 섬, 제주’를 비전으로 추구해 온 변화는 지역재생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제주는 인재들이 떠나는 섬이었다. 수도권으로 간 인재들은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자발적인 문화이민자를 시작으로 다양한 인재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U턴하는 인재들, 새롭게 유입되는 인재들과 제주도민들의 연결, 서로간의 존중을 통한 공동 번영, 지역의 가치를 재생하면서 글로벌한 것을 함께 창조해서 다음세대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재생(Regeneration)이다.

 제주 원도심의 재생에는 어떤 해결 과제가 있을까? 원도심 주민들은 떠나간 젊은층 인구 유입을 바라며, 공공기관의 역이전 등 시설의 확충, 노후건물 개보수 등 실질적 지원을 원한다. 그러나 원도심의 골목길은 지금 과거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과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의 '기억의 전쟁터'가 되어 있다. 전자는 '내 어린 시절의 길 그대로를 돌려놓아라!'고 절규하고, 후자는 '제주의 미래가치를 만들려다가 공격을 받아 상처를 받았다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 공감의 부재며, 소통의 부재다. 

 최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와 함께 원도심 재생을 위한 야심찬 협업을 도모하고 있다. 두 기관이 가진 역량이 합쳐지면 상호보완이 된다. 도시재생은 전통적으로 국토부 사업이다. 실행에 있어 인프라 중심 기능이 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재생에는 커뮤니티 형성이 핵심이다. 연결과 커뮤니티를 통한 혁신성장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잘 하는 영역이다.

 종합적인 해결을 위해 부처간 협력은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제주의 기관들 사이에서 협업이 일어나면서 상향식(bottom-up)으로 부처간 협력이 성사되고 있다. 제주기상청은 원도심의 구기상청 건물을 창업보육과 코워킹스페이스 용도로 제공하기로 했고, 도시재생지원센터는 90년전 구기상청 건물 인근의 제주성과 공신정 터의 길을 복원하고 건물의 내부 시설을 정비하기로 하였다. 혁신센터는 창업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의 건물주와 도시재생스타트업들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이렇게 구기상청 건물을 활용한 창업보육센터, 코워킹스페이스 프로젝트를 통해 중소벤처기업부, 국투부, 기상청이 제주에서 연결되었다.

 또한, 우리는 원도심의 건물주와 스타트업 임차인을 연결할 것이다. 그 연결고리에는 골목길을 사랑하는 건물주와 그 자녀세대가 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청년들이 떠나간 텅빈 거리를 지키며 무료한 노후의 일상을 보내는 건물주들의 바램은 떠나간 자녀세대들, 손주세대들이 골목길로 돌아오는 것이다. 원도심의 건물주는 좋은 임차인을 만나고 싶어한다. 내 건물에도 옆건물처럼 멋진 가게가 들어오길 바란다. 스타트업들은 장기임대 조건을 주며 든든한 후원인이 되는 좋은 건물주를 만나고 싶어한다. 이들을 연결해주고 커뮤니티를 형성해줄 수 있는 매개자 기능이 필요하다. 건물주가 스타트업(임차인)의 투자자가 되고, 임차인이 건물주(투자자)에게 사업의 성장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신뢰 자본의 축적을 원한다. 우리는 건물주가 자녀에게 건물 뿐 아니라, 골목길 기획자로서의 역할, 도새재생 스타트업을 키우는 엔젤투자자,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물려줄 수 있는 그런 즐거운 변화를 꿈꾼다.

 이들이 주인공이다. 원도심 골목길 거리 위에서, 세대(Generation)와 세대가 연결되고 지역(Region)과 지역이 연결되어 활력을 찾는 것. 원도심을 떠난 인재들이 다시 돌어와서 ‘인재가 유입되고 교류하여 새로움이 탄생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원도심의 본래의 핵심가치가 복원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지역재생(Regeneration), 지역발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연결, 초지능 시대의 제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