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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정환 Nov 14. 2015

[경계인 선언#2] 창의적 중력과 질량

 제주 더 크래비티(Jeju the Cravity) 컨퍼런스 세션.

 2박3일의 총 일정에서 첫날(2015.11.13)의 오프닝 파티에 이어 둘째날(11.14) 오전에 10명의 연사를 모시고 컨퍼런스가 진행되었다. 연사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주최측인 나에게도 큰 울림이 있었다.

 그들은 각각 다른 영역에 서 있지만, 그들에게 공통의 스토리 원형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적 불안감 속에서 자존을 지키고자 했고(정신지 작가가 말한 ‘불안불안한 자유(요즘 핫한 키워드라는 Precarious)’와 ‘마음단단해짐’일 것이다), 그러려다보니 불가피하게, 뜻하지 않게, 자신만의 창조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갔다.


 강단에 선 그들의 두 발은 '제주'라는 특이한 힘(중력) 위에 서 있었다. 제주에서 지난 수년간 그들 각자는 ‘자신의 심연’으로 물질해 들어가고, '자신의 오름'을 느리게 걸으며, 마음의 질량을 조금씩 높여갔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본 그들 하나하나는 굉장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관객 뿐 아니라 스텝들도, 연사들끼리도 그 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제주 더 크래비티 2015 연사들. 왼쪽부터 송정희(제주위클리), 홍창욱(무릉외갓집), 강경환(사우스카니발), 박소연(행복한요리사), 정신지(제주할망인터뷰어), 문주현(왓집)
제주 더 크래비티 자체 참가자 100여명(대부분 제주 도민) 외에도  경기콘텐츠코리아랩 100여명, 오이지몹 80여명

 불안불안한 자유의 길 속에서 그들은 자연과의 분리, 사람과의 분리, 자기 스스로와의 분리를 극복하고 자존을 찾았다. 그리하여 지존이 된 그들은 자신만의 창조적 비즈니스를 낳았다.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쓰레기’라고 모욕당했던 신치호님은 ‘쓰레기를 업싸이클링’하는 '폐자재 디자인 퍼포먼스 그룹 Re:'를 경영하며 지구를 구하는 비전을 실행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잘 나가는 작곡가였으나 우울증을 겪었던 방승철님은 제주의 가시리 마을 청년 두명에게 기타를 가르치러 정기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시간을 차를 타고 다니고 친구들에게 닭개장을 끓여주다가(이것은 이원재 소장이 말한 차승원이 <삼시세끼>에서 행한 '돌봄'의 영역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제주평화축제 위원장을 하게 된 것이다(이것은 '창조'의 영역이다). 제주도민으로서 예술을 사랑하는 3인의 젊은 여성은 플리마켓에서 서로에게 끌려서 왓집 공동대표가 된 것이다. 제주에서 탄생해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당당히 입성한 밴드 사우스카니발(리더 강경환)은 서울로 이동하면 수익이 2.5배 이상 높아진다는 기획사의 꼬임에도 불구하고 제주에 남은 것이다.  ‘너의 고향을 버리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지역 뮤지션에게 보란듯이 보여주고자, 돌, 여자, 바람 다음으로 사우스카니발이 되고자 인생을 걸고 있는 것이다.

폐자재 퍼포먼스 Re 신치호 대표. 그는 고졸의 비보이였다. 그의 짝다리에서 포스가......
방승철님은 제주에 대한 사랑, 감동, 순수한 목적을 통한 자발적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제주의 창의적 중력이다. 제주위클리 송정희 대표가 남들이 모두 말려도 제주에서 외국인 신문을 7년간 해 온 것도 그 중력 때문이고, 발표에서 소개한 리투아니아 출신 디자이너 Agne(29세)가 제주의 플리마켓을 누비고 다니는 것도, 4.3사건이 한참이던 1954년 제주에 도착한 아일랜드 출신 Patrick 신부(88세)도 60여년간 살고 있는 것도 제주의 중력에 끌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릉외갓집 홍창욱님도, 행복한 요리농부 박소연님도 자신의 일과 꿈과 삶이 분리된 삶으로부터, 하나가 되는 삶으로 변화해온 것이다. 부산출신의 제주대학생이었던 이금재님도 창업지원금이 소진되면 실패하는 반복 끝에, 자신의 특성(산만함과 동시다발성)을 존중하여 연결하는 업으로 삼아 ‘일로와제주’에서 ‘일하러와’, ‘FC차러와’, '제주청년창업협동조합'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제주위클리 송정희 대표는 제주를 사랑하여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은 다시 키노트에서 이원재 소장이 얘기한, 창조, 돌봄, 협상(연결)이라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비즈니스로 소환된다. 지난 60여년간 한국이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현재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놓쳤던 것들(자살률 최고, 출산률 최저의 지표를 보라), 로봇이 인간의 직업을 빼앗아가는 미래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비즈니스에 이어지는 것이다.

키노트를 했던 이원재 소장님. 세션 중간에 행복한 요리 농부 박소연님의 3개월된 아기의 '돌봄'을 실천하며 행복한 표정.

 휴식시간에 한 기자가 다가와서 내게 물었다. '감동을 받으며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그런데 놀랐어요, ICT 벤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요?' 여기에 내가 답한 것은 다음과 같다. 'ICT 기업을 보육하고 있어요. 내년 크래비티에는 아마 발표하게 되겠죠. 제주에는 이미 많은 창의적 비즈니스가 진행중에 있어요. 크래비티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발굴하여 드러내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려해요.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요? 미션이 확실히 있는 회사가 지속성장 가능하잖아요. 저는 제주에서 어떤 영역의 사업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션, '왜 제주에서 하는가'일 것이라 생각해요.'

 이 답은 이번 크래비티를 통해 발견한 것이다. 제주는 창의적 중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창의적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것이다. 만일 제주가 다른 지역과 똑같은 개발논리로 경제성장을 한다면 제주는 창의적 중력을 영영 잃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강연들은 제주에 이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오리엔테이션 같기도 했고(실제 이번 참가자 중 3분의 2는 제주를 사랑하는 육지의 창조계급들), 제주 도민들에게는 자신이 살아온 제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기도 했다. 제주 더 크래비티는 창조적 중력을 가지고 빠르게 변화해가는 제주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지켜나가야 할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변화시켜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공감하고 나누며, 사람과 영감과 용기를 얻어가는 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제주 U턴 인재인 문화인류학자 정신지 박사. 제주 해녀 할망을 인터뷰하면서 자신과 제주를 재발견했다. 마지막 연사로서 매우 질량감 있는 메시지들을 던졌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연사들의 포스터 싸인 퍼포먼스
제주 더 크래비티의 PM이자 예술경영 출신 동료인 록담 백영선

* 이 행사를 준비한 센터 직원 백영선님과 고은영님의 스토리는 자매지 CRAB에서 볼 수 있다.


2015.11.14 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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