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12년 전 연인이었던 사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흔한 선택도, 쉬운 선택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겪어보지 못하고, 굳이 겪으려 하지 않을 경험이다.
결혼식은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는 자리이지, 예전의 연인이 앉아 있을 공간은 아니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새로운 출발을 축복했지만,
그 자리에 참석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날 밤까지 많이도 갈등했다.
그땐 20대 초반이었다.
막 군 복무를 마친 직후였고, 혈기왕성했지만 어렸다.
결핍이 많았고, 감정적인 갈등이 생기면 회피하던 사람이었다.
아직 관계라는 것에 미숙했고, 그것을 잘 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어느 날 저녁, 몰아치는 감정 속에서 사소한 이유로 이별을 택했다.
그것이 20대 초반, 2년간 만난 연인과의 마지막이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던 어느 날,
내게 일어났던 어떤 일을 계기로 다시 연락이 닿았고, 가끔 안부를 나눴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 친구에겐 이미 몇 년간 만난 연인이 있었고, 나 역시 곧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
이후로는 서로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고,
필요에 의해서만 가볍게 연락하며, 서로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러갔다.
그러다 문득, 올해의 초 언젠가 그 친구가 결혼 소식을 전해왔다.
예전에 직접 전해 들었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함께한 연인과의 결혼 소식이었다.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예전 연인의 웨딩 사진을 보게 된 그날은 생각보다 심란했던 것 같다.
설명할 수 없는, 가볍지만 길게 남는 감정이 하루 종일 나를 맴돌았다.
얼마 후, 직접 만나 청첩장을 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시간을 내어 식사를 대접했고,
나는 굳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청첩장을 전하려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애가 뭔지 알게 되었어. 고마웠어."
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고맙긴 했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이 스며들었다.
결혼식은 꽤 먼 곳에서 열렸다.
전날까지도 고민하던 내가 그 거리까지 간 이유를 지금도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내 존재가 혹시 흠이 되진 않을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순수한가.’
‘그 순간을 나는 온전히 잘 보내줄 자신이 있는가.’
내가 참석하지 않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자리였다.
오히려 이 얘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참석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 자리에 가기로 했다.
가지 않았을 때 남았을 후회가, 참석해서 마주할 감정보다 더 무거울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그 결정을 후회하진 않는다.
신부 대기실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 친구를 마주했다.
그 순간 느꼈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말로 옮기긴 어렵다.
오랜 시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위로 떠오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시시콜콜한 농담과 축하의 말, 가벼운 대화가 오고 간다.
당시의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와줘서 고맙다며, 내가 결혼할 때 꼭 자기도 불러달라고 얘기한다.
분명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뭔가 현실감이 없다.
비현실적이었던 짧은 대화를 뒤로 한채, 다음 손님에게 신부 대기실을 넘겨준다.
어느덧 예식이 시작된다.
나는 뒷 쪽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앉아 모든 장면을 지켜보며 진심으로 축하했다.
성혼 선언문과 축가, 양가 부모님 인사가 진행된다. 뒷자리에 앉은 터라 잘 보이진 않는다.
마지막 행진의 순서에서 마주친 눈인사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전 연인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이 자리에 앉아 내가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는 모습에 그저 피식 웃음이 났다.
예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 시간에 이리 오라는 손짓을 받았지만,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양했다.
이미 생각보다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예식의 마지막 장면까지 조용히 눈에 담고, 예식장을 빠져나온다.
점심시간이었지만 딱히 밥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돌아갈 갈 길이 멀기에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분명 씁쓸한 뒷맛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감정은 미련이라기보다는, 다시는 닿을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애도에 가까웠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미숙했던 그 시절과의 조용한 작별이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성숙했다면.’
‘조금만 더 나중에 만났더라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어떤 관계를 놓쳤는가 보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잃고 또 무엇을 얻었는지를 떠올려본다.
이 글은 후회나 미련을 정리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애써 긍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과거의 한 장면이 조용히 닫혔고, 그 쓴맛을 느끼며 보내주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기 위함이다.
모든 감정이 설명될 필요는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감정들이 있다.
아마 내가 느낀 그 씁쓸한 뒷맛도, 그런 종류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2025년 7월 21일에 초안을 작성하다.
2025년 7월 23일에 발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