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지는 순간이 있다.
존재를 멈추지 않고는 어떤 생명도 한층 높은 차원의 존재로 승화할 수 없다.
– 아난다 쿠라사스와미
삶은 도약한다.
평범했던 한 사람은 어떤 <결정적 순간>을 통해 비범해진다.
지금껏 그런 순간을 전환점이라고 불러왔다. 삶의 위대한 각성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전환의 순간>은 긴 인생을 압축해서 보았을 때 하나의 시점처럼 보이는 것일 뿐, 실상은 시점이 아닌 기간에 가깝다. 한순간의 사건은 인생을 바꾸지 못한다.
자칫 전환점이라는 개념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진실은 어느 누구의 삶도 통렬한 한 방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삶의 급선회>라는 이런 환상은 매주 푼돈을 들여 로또를 사는 일확천금을 기다리는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바꿔 줄 커다란 사건을 마냥 기다리게 한다.
전환점이라는 하나의 계기 때문이 아니라, <전환기>라는 실험의 기간을 통해 삶은 깊어지는 것이다.
전환기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기간인가?
직업을 바꾸는 시기를 말하는가 아니면 직업적 수련의 시기를 의미하는가?
혹은 내면적 성숙의 시기를 가리키는가?
전환기 = 실험과 성찰을 통해 내면의 가치관과 방향성이 달라지는 과정
전환기는 삶을 <실험>하는 시기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찾아서 살려 내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시험의 의미에 가깝다. 다양한 모색을 하는 시기인 것이다.
비유컨대 수련기가 한 우물을 깊이 파는 것이라면 전환기는 한 우물을 파기 전에 좋은 우물을 찾아 이곳저곳을 시추하는 시기인 것이다.
<성찰>이 전환기의 주요 활동이 된다.
전환기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깨달음인데, 깨달음은 안으로 자신을 곱씹는 과정을 전제한다.
성찰은 자신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세상에 알려진 나에 가려져 있던 <더 깊은 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실험은 밖으로의 모색을, 성찰은 안으로의 성국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적이다.
전환의 주 무대는 <내면>이다.
전환의 본질은 직업과 성공, 인간관계 등 외형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환기는 외부의 사건에 의해 촉발되지만 궁극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내면의 가치관과 방향성이다. 전환기는 직업의 전환, 사회적 성취, 이민 등의 외적인 변화와 구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환기는 <과정> 중심이다.
즉, 목표나 결과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가령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이 될 것을 목표로 시험을 준비하는 등,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다면 전환기라 볼 수 없다.
오히려 전환기는 반대쪽 터널 끝의 풍광은 알지 못한 채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과정이다.
브리지스는 이 시기를
<서커스의 곡예 그네를 타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그네를 보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잡고 있는 그네를 놓아야 하는>
상황에 비유한다.
전환기는 특성상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효율성>이나 <속도는 전환기와는 거리가 멀다.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전환기를 빨리 통과하고자 하는 태도로는 결국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경쟁>이나 <성취>의 시기도 아니다. 오히려 전환기에는 홀로 방황하며 갖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러나 이런 비효율의 방황들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자신을 키우는 최고의 투자가 된다.
전환기는 <멈춤의 시간>이자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가 꿈꾸는 삶을 발견하기 위한 <탐험의 시기>이다.
괴테는 <사람의 인생이란 10년마다 달라지는 나름대로의 운명, 희망, 요구가 있다>고 했고, 공자는 이를 가리켜 이립, 불혹, 지천명 등으로 구분하기도했다. 다시 말해 10년마다 삶의 화두와 방향성, 가치관 등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의 단계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철저한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