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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예슬 Feb 23. 2022

고양이 덕에 이웃의 존재를 알았다


작년 12월 부턴가, 우리 동네에 작은 턱시도 냥이 한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손을 내밀면 꼬리 들고 쪼르르 달려와 번팅을 하는 아이, 근처에 앉으면 무릎 위로 올라와 골골송을 불러주는 아이. 동네 사람들은 그 아이를 나비라고 부른다. 나비 덕에 집에 있는 시간에는 창문 밖을 내다보는 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나비가 있는지 보려고. 나비가 보고 싶어서.



오늘은 추워서인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놀이터에 나온 나비. 나비가 보이면 나는 미리 챙겨뒀던 밥이랑 물을 챙겨 내려가서 한참을 같이 있다 와주는데, 돌봐주고 있으면 맞은편 3층 어머님이 베란다 문을 여시고 나비 밥 먹었냐고 물어보신다. 오늘은 드디어 3층 어머님을 직접 뵈었다. 수분 섭취가 어려운 겨울이니 만큼 삶은 닭가슴살을 물에 적셔 츄르랑 같이 들고 나오신 어머님과 나비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몰랐던 점들을 많이 알았다. 그 어머님께서 아침이랑 저녁에 한 번씩 밥을 챙겨 주시는데 사람 손을 많이 타서 다른 고양이들과는 잘 못 어울린다는 점, 많이 추울 때는 밥을 많이 먹고 하루종일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이 동네에서 처음 봤을 때가 완전 아기였으니 지금은 한 살 정도 된 것 같다는 점.





어머님이랑 얘기 나누고 있는데 한 노부부께서 좋은 일들 하신다면서 합류하셨다. 그때 이미 나비는 사료 두 그릇에 츄르 3개째 격파 중이었다. 노부부 중 할머님께서 나보고 고양이를 키우냐 물으셨다. 아니라고 하니 그럼 집에 사료는 어떻게 있냐고 물으시길래 얘 때문에 처음으로 사본거다 말씀 드리니, 본인들도 얘 주려고 집에 사료캔을 잔뜩 쌓아두셨다고 한다. 이 추운 날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서로 측은하게 나비를 바라보다가. 단지 마다 마스코트 냥이가 있는 단지에는 경비실 옆에 고양이가 지낼 수 있는 상자라도 놔두는 경우가 있던데 우리도 건의해보면 어떨까 하는 상의를 나누었다. 암컷이라 더더욱 중성화 시키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잠시 뒤 어제 나비가 새끼를 낳은 어미 냥이라며 새끼들이랑 지냈던 땅굴에 데려가 보여줬던 어린 남학생도 합류했다. 학원이 끝나고 들어오는 길에 늘 나비를 예뻐해주러 들르는 듯 보였다. 나는 어제 본 친구네! 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노부부는 정말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하시곤 먼저 자리를 뜨셨다. 이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결코 느껴보지 못 했을 이웃들과의 정이다. 이렇게 작은 생명이 동네는 커녕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일이 빈번한 삭막한 도시의 한 공간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기도 한다.


또 다른 2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 주민분이 합류하여 네 개째 츄르를 물려주는 걸 보고 한껏 따스해진 마음 안고 나도 발길을 돌렸다. 오늘 밤도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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