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기 전에 나비를 병원에 데려가 중성화도 시키고 예방 접종도 맞춰주려고 3일에 걸쳐 이동장 훈련을 했다. 처음에만 낯설어 하고 바로 이튿날 부터 곧잘 들어가서는 문을 다 닫아도 당황하지 않아서 포획은 걱정 없고 이제 병원에만 잘 다녀오면 되겠다 안심하고 있었다. 이동장 훈련 3일째 되던 어제, 나비랑 또 한참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같은 라인 807호에 사시는 어머님이 들르셔서는 나비가 배가 너무 볼록하다고 임신한 거 아닐까 하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얘가 첨 봤을 때에 비해 배가 많이 불렀다고 걱정은 했지만, 배를 만져도 예민하게 굴지도 않고 요즘 워낙 하루에 세끼 이상 잘 챙겨먹고 다녀 살이 찐 걸거라고 생각했는데 속으로 걱정만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의 음성을 통해 들으니 갑자기 쎄한 촉이 왔다. 마침 이동장 문 열어달라고 자진해서 들어가는 나비 덕에 수월하게 포획을 하고는 급한대로 집에 올라왔다. 병원은 하루 지나 오늘 갈 계획이었던지라 차키랑 지갑이랑 아무것도 안 챙겨왔었기에 나도 정신이 없었다. 처음에 당황해서 크게 우는 나비 울음소리에 마음이 아팠지만 입고 있던 외투를 이동장 위로 덮어주니 금세 잠잠해졌다.
짐을 챙긴 후 동물병원에 전화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의사쌤은 우선 외관만 딱 봐도 다른 데는 말랐는데 배만 커진 걸 보아 임신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엑스레이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하는 동안 나비는 아주 잠시 약간의 몸부림만 쳤을 뿐 하악질 한 번 안 하고 발톱 한 번 안 세우고 얌전히 내 눈을 바라봐 주었다. 검사 결과는 임신. 임신 4-5주차 된 것 같고 4월 말에서 5월쯤 출산을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출산 후 한달 정도는 새끼들 젖을 물려야 하니 그 시기 지나서 다시 중성화 시키자고. 나비를 다시 데리고 나와 차에서 이동장 문을 열어주었다. 많이 놀라서 문 열어주자마자 차 안을 뛰다니며 생 난리를 부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동장에 가만히 앉아 고개만 쏙 내밀어 창 밖을 구경하는 나비.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나마 겨울이 지나 다행이긴 한데 출산은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새끼들 케어는 어떻게 해야할지, 새끼들까지 나비 따라 우리 단지에 정착한다 그러면 이미 나비 밥 주지 말라고 민원 넣고 계신 소수의 주민 분들이 더 강하게 쫓아내려 하진 않을지, 새끼 낳고 훌쩍 영역을 옮겨버리진 않을지, 출산하고 한달 이내에 또 다시 임신을 하진 않을지. 온갖 걱정이 스쳤지만 나비는 고맙게도 병원에 데려간 나를 미워하기는 커녕 내가 본인의 안녕을 위하는 사람이라는 걸, 자기에게 절대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아는지 방사하자마자 바로 머리를 콩 박아주고 꼬리 살랑거리며 발라당 배도 보여주었다.
그래도 어쨌든 놀랐을테니 한동안 안 나타나는 건 아닐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어제 오후 늘 나오던 시간에 또 나온 나비. 놀이터에 모인 아이들에게 나비의 임신 소식을 전했고, 아이들은 나비 임신했으니 더 자주 와서 예뻐해 줘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나비가 좋은 동네에서 많은 사랑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비의 임신을 무조건 걱정하기 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따른 생명의 축복이라 생각하기로, 그리고 순간 순간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더 성심성의껏 해주며 흘러가는대로 지켜봐주기로 마음 먹었다. 여태 가족에게든 연인에게든 느껴보지 못 했던 류의 너무도 큰 사랑을 나비에게서 느끼는 나날이다.
오늘도 나비는 아침을 먹으러 나왔고 내 무릎 위에서 잠시나마 몸을 따뜻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