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in 1993.04.07
28살,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3년여의 시간이 흘렸을 무렵, 약 10년 간의 서울 생활을 갑작스럽게 뒤로 하고 고향인 광주로 내려왔다.
별안간의 일이었다. 거창한 일도, 어떤 시련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어느 시점부터인지 가늠할 수는 없으나,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 생각은 덩치를 슬며시 키워나갔다. 마침내 나는 회사가 끝나면 채용공고를 뒤지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고향 근처에 있는 기업의 채용형 인턴에 합격했다.
막상 합격을 하고 나니 무서웠다. 더군다나, 합격한 기업의 입사일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광주에 다시 내려가는 것도 결정하기 버거운데, 채용형 인턴 입사의 특성상 떨어질 수 있다는 불확실성까지 떠안아야 했다. 거주지 변경도 모자라 무직이 될 수도 다는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깜빡이 없는 급격한 차선 변경이었다. 1차선에서 3차선으로 가는지 3차선에서 1차선으로 가는지 가늠이 안 됐다. 나 스스로의 확신이 없으니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도 결정을 말렸다.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하는데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았고, 마음이 급하니 이성적인 판단은 더욱 되지 않았다. 28살 인생 동안 주변의 대다수가 말리는 결정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밤마다 내 결정이 옳은 건지 생각하고 가늠해야 했다. 그리고 결정을 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왔을 때는 결국 논리적인 판단을 포기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후회할 것 같아서’라는 직관 하나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강행했다.
한순간에 나의 '위치' 가 바뀌었다. 위치가 바뀌니 자연스럽게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문 열고 아침에 제일 먼저 마주하는 존재가 강아지 후추에서 엄마/아빠로 변했다. 직장에서는 대리 진급을 바라보는 직장인 3년 차가 아닌, 그저 잘 보이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신입이 되었다. 즐겨 찾던 빵집과 커피집, 좋아하는 대형 쇼핑몰과 내 취향의 장소들에 못 가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돌이켜 보면, 1년 전 결정할 당시의 나는 '위치' 변화로 인한 ‘물리적인 환경 변화’를 가장 두려워했다. 새롭게 경험해야 하는 물리적인 환경들이 눈에 그려지지도 잡히지도 않았고, 그로 인해 생겨날 불확실성을 무서워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들을 반추해보면 그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했던 요소는 ‘관계의 변화’였다.
광주로 내려온 이후 어떤 인간관계는 새로 생겨나서 아주 뚜렷해졌고, 어떤 인간관계는 한동한 희미해졌었다가 다시금 선명해졌다. 또 어떤 관계는 아주 뚜렷했었으나 희미해졌다. 선명함과 희미함을 오고 가는 관계의 변화 속에서 나의 현재 삶의 만족도를 좌지우지하는 건, ‘뚜렷해지는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과 ‘희미해지는 관계에서 느끼는 아쉬움’ 간의 총량 차이였다.
과거의 내가, 지금 관계들의 선명함/희미함을 예측할 수 없었기에 당시 결정이 어려웠던 건 당연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현재의 내가 미래에 나의 이 ‘위치 변경’을 어떻게 생각할지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래의 내 관계 중 어떤 관계가 선명해질지, 새롭게 생겨날지, 관계들의 거리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를 관망하며 현재의 내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건 한 가지다. 희미해지는 인간관계가 더 이상 희미해지지 않기를, 선명해진 인간관계가 그 선명함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19살의 나와 29살의 내가 같은 장소에 앉아 적는 이 글의 본질은, 전국 곳곳의 다양한 위치에 있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요청문이자 반성문에 가깝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든, 반대로 상대방이 어느 위치에 있든, 내 주변 관계들이 선명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내 주변의 관계에 더 힘을 쓰기를 바라는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내 주변이 그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요청을 이 글을 통해 전달한다. 관계의 선명함을 키워나가 서로의 인생에 즐거움과 행복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30±1살,
[위치]
written by YOO SUYOUNG
@__suyoung
유수영, born in 1993/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