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in 1993.05.28
인생의 동력(이라기엔 거창하지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학생 때까지는 ‘평가와 기대감’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밥벌이를 하기까지 그 짧은 인생 속 대소사에는 늘 평가가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넌 잘할 거야"라며 어깨를 토닥이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왔다. 실제로도 그 기대를 저버린 적은 거의 없었다. 수능도, 학점도, 취업도 모두가 "역시"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세상에는 늘 정해진 목표와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물다섯에 내던져진 사회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뭘 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좋은 학교를 가야 해",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해야 해"와 같은, 20여 년 동안 내 인생의 밑바탕이었던 평가의 지표가 더 이상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자유와 함께 나는 오춘기를 맞이했다.
명확한 목표 아래에서 열심히만 살아왔던 나에게 너무도 급작스럽게, 그리고 원치 않게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사소하게는 '퇴근하고 뭐하지?'부터 크게는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까지, 나에게는 막막한 것 투성이었다. 더 이상은 그 누구도 나에게 알려주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었다. 오롯이, 그리고 온전히 인생의 모든 그림과 선택이 나의 몫이 되었다.
혼란스러웠다. 시간과 돈은 전보다 많아졌는데, 오히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술을 열심히 먹거나 친구를 열심히 만나는 것 뿐이었다. 별다른 꿈이나 생각 없이 살았던 나에게 이 자유는 되려 어렵기만 했다.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조차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뚜렷한 취향도, 주관도 없는 그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사회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색깔이 다채로웠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주관도 확실해서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실은 나에게 또 다른 혼란을 주었다. 나는 그동안 잘못 살아온 건가? 같은 결과 값인데도 왜 나만 속이 비었을까? 나는 뭘 놓친 걸까? 하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았던 사회 초년생. 그렇게 나의 20대 중후반은 끊임없이 혼란스러웠다. 채찍질도 했다가, 오답노트도 만들어봤다가, 셀프 위로도 해봤다가, 에라 모르겠다, 으, 앞으로는 어쩌지의 무한 굴레. 그 과정 속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을 잃기도 하고, 또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도 하며, 아프고도 설레는, 뒤늦은 자아 형성의 시기를 나는 지금 지나고 있다.
서른을 앞둔 지금도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내 인생의 그림 같은것은 그릴 줄 모른다. 그저 예전과 같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뿐이다. 그래도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히려 예전의 경주마 같은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어렵고 막막하기만 했던 자유를 이제는 그 자체로의 ‘자유’라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인생의 그림을 스스로 그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막막함을 애써 미루고 바로 보니, 아쉬운 것도 많고 또 다른 어려움도 생기는 듯하다. 하지만 분명 앞으로는 더욱 더 어려울 인생, 결국은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더 알아가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게 내 꿈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 진짜 나를 찾은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은 잃어버린 나의 인생의 새로운 동력을 찾게 되길 바래본다.
30±1,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서른이 되는 길]
written by LEE SUNGHEE
@dd0h2
이성희, born in 1993.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