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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Mar 23. 2018

#109.별과 사막 그리고 어린왕자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이집트 #시와사막투어

#모래썰매 #사막캠핑

#2017년10월15일~17일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사하라 사막 동쪽 끝에 위치한 시와 사막>

시와 마을에는 여행사가 하나 있다. 그 여행사는 간판이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뽀얗게 뒤덮여 있어 쉽게 찾을 수 없음에도 꽤나 장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시와 사막으로 투어를 가기 위해서는 허가증 발급과 가이드 동반이 필수이기 때문에 친절하든 그렇지 않든 다들 이 여행사를 찾아가곤 한 것이다. 하지만 알아본 결과 꼭 여행사를 통하지 않아도 묵고 있는 숙소에 문의하면 투어를 연결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팜트리 호스텔 직원에게 시와 사막 투어를 예약해달라고 부탁했다. 가격은 두 사람이 단독으로 진행할 경우 1200파운드(약 78,000원). 하지만 동행할 사람들을 모집하면 지프차 가격을 나누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더 저렴해진다. 1200파운드 중 지프차 가격은 750파운드(약 48,750원)였고 최대 6명까지 함께 갈 수 있다.

<낡고 소리도 요란한 우리의 지프차.>

오후 3시 낡은 지프차 한 대가 호스텔 앞에 멈춰 섰다. 간단하게 추린 하루짜리 짐과 함께 뒷좌석에 오르니 가이드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다. 동행을 구하지 못해서 가격 흥정에는 실패했지만 둘만 오붓하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를 태운 지프차는 정돈되지 않은 흙길을 따라 날렵하게 달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저 멀리 사막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곡선의 미가 느껴지는 사막의 스웩.>

가이드 아저씨는 본격적인 사막 라이딩에 앞서 우리가 타고 온 지프차의 바퀴 바람을 얼마간 빼내는 작업을 진행하셨다. 그래야 모래에 바퀴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준비가 끝난 지프차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모래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멋진 범선이 파도를 타듯 부드럽게 모래 능선을 타 넘었다. 나는 가져온 셔츠로 얼굴을 가리고 창문을 열어 사막의 바람을 맞이했다. 사방에서 모래가 날아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가 사막에 있다. 내가 사막에 있다!!

<60도 경사를 거침없이 올라가는 지프차. 태양으로 들어가는 줄.>

우리의 환호가 커질수록 아저씨는 그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점점 더 높은 경사의 모래 언덕을 찾아냈다. 그리고 후진으로 도움닫기를 위한 최대한의 거리를 만든 후 미친 듯이 속력을 높여 단숨에 언덕을 넘어 버렸다.


-흡. 우아아아!!!!! 악!! 얄라비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보다 훨씬 짜릿한 스릴에 우리는 마구잡이로 발을 구르고 팔을 흔들고 얄라비나를 외쳐댔다. 아저씨는 그런 우리의 반응이 재미있으셨는지 함께 얄라비나를 외치며 최선을 다해 재미있는 구간으로 차를 몰아주셨다. 한바탕 라이딩을 즐기고 나서는 언덕 위에 차를 세우고 샌드 보딩에 도전했다. 보드를 언덕 꼭대기에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아 최대한 몸을 뒤로 눕히면 출발 준비 완료. 이 상태에서 아저씨가 자비 없는 밀기를 시전해 주시면 보드와 나는 매끈한 모래 언덕을 따라 세상 끝까지 미끄러져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활짝 웃는 치아 사이로 모래 퍼붓기 2초 전.jpg>

이 재미있는 것을 한 번만 타는 것은 사막에 대한 예의가 아닌 같아 씩씩하게 보드를 들고 다시 언덕 위로 향했다. 하지만 가도 가도 꼭대기는 가까워질 줄을 몰랐다. 5분 걸어 올라가서 5초 내려오는 시스템이라니. 역시 모든 즐거움에는 다 그만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인가 보다.   

<내려갈 땐 멋짐, 올라갈 땐 쭈글.>

샌드 보딩에 체력을 다 쏟아붓고 난 뒤에는 오아시스와 온천 구경을 했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오아시스에 발을 담그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저 멀리 가이드 아저씨가 차 보닛을 여는 모습이 보였다. 아, 우리 차가 퍼졌구나. 하지만 다행히도 다른 손님들을 태우고 온 가이드들이 선뜻 나서서 차 고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별 탈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푸른 오아시스 속에는 물고기도 많이 산다.>

다음으로 차가 멈춰 선 곳은 허허벌판. 아저씨는 이곳에 아주 신기한 것이 있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사막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을 듣기 위해 차에서 내려 모래 위를 걷는데, 발밑으로 하얗고 단단한 물질들이 나타났다. 이게 무엇일까 궁금해 허리를 숙여 자세히 내려다보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대박'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너네가 왜 여기서 나와?>

내가 본 것은 조개와 불가사리의 화석이었다. 응? 너네가 왜 여기서 나와? 사막 한가운데 바다 생물의 화석이라니. 이 어리둥절한 상황은 아주아주 오랜 옛날 이곳이 바다였다는 전제를 달고서야 겨우 정리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매일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이지 지구라는 이 별은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수백 수천만 년 전 바다였던 곳이 솟아나 사막이 되기도 하고, 대륙의 판과 판이 만나 거대한 산맥을 이루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고 놀랍다. 그리고 이렇게 눈으로 확인한 순간은 여지없이 '대박'을 10콤보로 외칠 수밖에 없게 된다.

<열정을 시각화하면 사막의 노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연의 이야기에 한참 귀를 기울이는 동안 사막에도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서둘러 차를 몰아 아무도 없으면서도 일몰을 잘 볼 수 있는 포인트에 우리를 내려 주셨다. 고운 모래가 산처럼 쌓여 능선을 이루고 있는 그곳은 꿈 속도 현실도 아닌 전혀 다른 세상 같아 보였다. 주변은 온통 모래뿐이었고 적막이 가득했으며 바람의 비질로 매 순간 모습이 변해가는 세상. 태양의 빛으로 나보다 나의 그림자가 더욱 온전해지는 장소. 그런 곳에서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부드러운 모래를 느끼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겨왔다.

<폭신한 모래 위에 앉아 즐기는 차 한잔.>

낮과 밤의 경계가 되는 시간, 아저씨는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와 불을 지피셨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도자기 주전자를 올려 차를 끓여 주셨다. 나는 따듯한 차를 마시며 차갑게 식어가는 사막의 하루를 지켜보았다. 어린 왕자가 바라보았던 사막의 석양이 이러했을까. 눈앞의 장면들이 아름답고도 쓸쓸해 보였다.

<시와 캠프의 모닥불은 낭만 그 자체.>

사막에 밤이 내리고 우리가 하룻밤을 보내게 될 시와 캠프에도 불이 켜졌다. 우리는 모래 위에 세워진 몇 개의 텐트 중 원하는 곳에 짐을 풀고 작은 온천탕에서 족욕을 했다. 따듯한 물속으로 하루의 피로가 나른하게 퍼져나갔다. 족욕을 즐기는 동안 마당에는 모닥불이 피워졌고, 주인장은 서둘러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제일 먼저 모래 구덩이를 하나 팠다. 그리고 그 속에 양푼같이 생긴 솥을 넣었다. 솥에는 모닥불에서 빼온 숯을 깔고 그 위에 그릴을 얹은 뒤 양념한 생닭을 올렸다. 그런 다음 솥의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커다란 돌덩이와 숯덩이들을 올린 뒤 마지막으로 모래를 덮어주었다. 이것이 이 마을 전통 요리 방식이란다.

<전통이 가미된 맛 대장 치킨 요리.>

나는 요리가 끝날 때까지 모닥불 곁에 앉아 어린 왕자를 읽었다. 자신의 별을 떠나 세상을 여행하던 어린 왕자가 일곱 번째로 도착하게 되었던 별. 그 별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이다. 그중에서도 이곳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작가인 생떽쥐베리와 뱀 그리고 여우와 장미들을 만나 서로를 길들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느 날 어린 왕자는 이 모든 것들을 떠나 소행성 B612로 돌아간다. 자신의 작은 몸까지도 이 별에 남겨 둔 채로 말이다. 작가는 책 마지막 부분에 사막의 모래 언덕과 빛나는 별 하나를 그려 넣고 이렇게 글을 마친다.

<출처: 1973년 문예출판사의 어린 왕자 속 마지막 삽화>

'어느 날 아프리카의 사막을 여행하게 되면 이곳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이 풍경을 자세히 보아 두라. 그리고 이곳을 지나가게 되거든 제발 서두르지 말고 바로 별 아래서 잠시 기다려라! 그때 한 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오면, 그 애가 웃고, 그 애의 머리가 금발이면, 물어도 그 애가 대답하지 않으면, 그 애가 누구인지 여러분은 잘 알리라. 그때는 친절을 베풀어 달라. 이다지도 슬퍼하는 나를 그대로 버려두지 말고, 이내 편지를 보내 달라. 그 애가 돌아왔노라고...'  


저녁을 먹고 나서도 나는 책의 마지막 장이 넘어갈 때까지 모닥불에 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을 읽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품고 아름답게 반짝였다. 이것은 떠남을 슬퍼했던 작가에게 어린 왕자가 마지막으로 준 선물이었다. 세상 모든 장미와 어린 왕자가 보살펴준 단 하나의 장미가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것처럼, 어린 왕자라는 특별한 아이를 알게 된 이상 그리고 그 아이가 저 별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이상, 이제 작가에게 저 별들은 절대 평범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별빛은 어린 왕자의 웃음이니까.

<저 하늘 수많은 별들은 모두 어린 왕자의 웃음이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목이 말라 잠시 깬 새벽, 사막의 하늘은 모닥불이 있을 때 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둠과 별빛뿐인 고요한 그 시간 속에서 아주 잠깐 바람에 스치는 금빛 머리칼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하늘을 살핀 뒤 저 수많은 별 들 중 어딘가에 살고 있을 생떽쥐베리에게 이내 편지를 썼다. 그 애가 돌아온 것 같다고, 곧 당신의 별로 철새들을 따라 날아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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