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어~~~~~
어디를 다니나 연녹색의 초원에 푸른 하늘,
가끔 보이는 빛나는 강줄기!
그리고 조금만 벗어나면 붉은 흙과 절벽과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까지.
그 어느 곳도 감탄하지 않을 곳이 없었고, 눈을 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운전하면서 사진을 찍지 못해 안타까워 눈에 열심히 담으면서 돌아다녔다.
프린스에드워드섬은 마치 빨간 머리 앤을 위한, 그리고 빨간 머리 앤에 의해서 존재하는 곳 같았다.
캐나다 극동에 있는 작은 섬으로 캐나다 면적의 0.1%도 되지 않아
지도에도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주란다.
반면 인구 밀도는 가장 높다고 하니 이 나라가 과연 크기는 큰가 보다.
내가 볼 때는 다운타운에 나가도 그다지 사람이 많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주도는 샬럿타운(Charlotte Town)이고 빨간 머리 앤을 만나기 위해서는
샬럿타운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캐번디시(Cavendish)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숙소는 캐번디시에 있는 곳으로 예약을 했다.
여기는 대체로 호텔이 아니라 코티지다. 난 그게 더 낭만적이어서 좋았다.
알고 예약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숙소가 아주 명소였다.
숙소에서 우회전해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앤이 살던 그린 게이블즈가 있고,
좌회전하면 그보다 조금 더 가까이에 에이번리 빌리지, 쉽게 말하면 앤 민속촌 같은 곳이 있다.
숙소도 어쩜 이리 잘도 잡았는지^^
참고로 숙소 이름은 레이크뷰 랏지 앤드 코티지(Lakeview Lodge and Cottages)다.
창문은 아래서 위로 올려야 하는데 아주 뻑뻑해서 기름칠이 필요했고,
주방에 프라이팬이 없어 큰 냄비에 계란 프라이를 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낭만적이었다.
그리고 캐나다 스타일의 집에서 내 집처럼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나를 부요롭게 해 주었다. 마치 영화 속 병든 귀족집 딸처럼ㅋㅋㅋ
병든 거랑은 상관없이 난 시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짱짱하긴 했지만^^;
숙소 가까이에 있는 그린 게이블스와 몽고메리 관련된 몇 곳을 소개해보겠다.
1. Anne of Green Gables
아~ 빨간 머리 앤이 살았던 배경 중 가장 유명한 빨간 머리 앤의 집을
내 눈으로 보고,
내 발로 밟아보고,
내 손으로 만져보고,
내 귀로 듣고,
내 온몸으로 느끼다니!!
처음 초록 지붕 집을 들어갈 때 헉! 하고 놀랬다.
중국 관광객이 우르르 관광차에서 내려서^^;
초록 지붕 집을 보는 순간 사람들이 많아서
우선 한 바퀴 휘리릭 돌고 계단 아래로 연결된 유령의 숲으로 갔다.
숙소에서 가까우니 오늘만 기회가 아니라는 거!
다이애나를 만나러 갈 때마다 지나다니던 연인의 오솔길
그리고 무서워 덜덜 떨던 유령의 숲길.
그리고 졸졸졸 흐르는 드라이어드 샘가!
나무로 만든 다리 아래로 잔잔하고 맑게 흐르는 샘물을 보며
이곳에 브로치를 빠뜨렸다고 꾸민 거구나.
그러기에는 너무 얕은데??
아유 이 앙증맞은 상상력을 어찌하면 좋나ㅋㅋㅋ
이곳에 오기 전에는 모든 길이 책 그대로인 줄 알았다.
매슈가 앤을 마중 나갔던 브라이트 리버역을 기점으로
기쁨의 하얀 길을 지나고
반짝이는 호수님을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또, 앤이 다이애나 집의 불빛을 보고 향해 가던
다이애나 집은 어디에도 없었고,
연인의 오솔길과 유령의 숲길이 연이어 있지도 않았다.
유령의 숲길과 연결된 줄 알고 계속 걸었는데
그저 숲 속의 오솔길로만 이어졌을 뿐.
연인의 오솔길은 초록 지붕집 뒤편으로
이어진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프린스에드워드섬의 이곳저곳의 아름다운 장소에서 영감을 받아
책에 꿰어 맞춘 걸 알고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난 소설 속 모든 장소가 실재한다고 오지게 착각한 거였다..
그 결과 가장 기대를 걸었던 4,500m나 되는 사과 나무길,
앤이 이름 붙인 기쁨의 하얀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실망했다.
우리나라라면 일부러 길을 만들었을 텐데 말이다^^;
어찌 보면 책과 달라 보물찾기 같아서 우리에게는 더 모험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어쨌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이 모든 길을
몽고메리도 다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초록 지붕 집> <반짝이는 호수님>
<앤의 방> <유령의 숲길>
유령의 숲길 가는 길에 진짜 유령 같은 나무가 뙁! 연인의 오솔길
2. 몽고메리 공원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숙소의 위치는 환상이었다.
빨간 머리 앤의 집을 걸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 더 나가면
몽고메리 파크가 있고, 조금 더 걸어오면 몽고메리가 근무했던 우체국,
길 건너편에는 몽고메리의 무덤까지.
우리가 머문 캐번디시는 온통 몽고메리 발자취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몽고메리 공원은 어디서나 몽고메리 좌상을 볼 수 있다.
가까이에 가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자애롭고 아름다운지
마치 살아있는 느낌까지 들었다.
이 사람의 영혼 속에 살아 있는 앤,
아니 그녀 자체가 앤이었을 그 얼굴을 보니 눈물이 살짝 맺혔다.
3. 몽고메리 무덤
건너편에는 몽고메리가 잠들어 있는 무덤이 가까이 있다.
서양은 도로가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무덤들을 볼 수 있어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몽고메리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글귀가 새겨진 아치 문양을 지나
돌길을 따라 걸으면 몽고메리의 묘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캐번디시에 머문 몽고메리의 삶과 죽음은 여전히 그녀의 삶이 진행 중인 듯.
하지만, 그녀의 일기장에는 그녀의 삶을 지옥, 지옥, 지옥이라 써 놓고 힘겨워했다는데...
지옥 같은 삶이 있었기에 100년이 넘도록 빨간 머리 앤이
더욱 아름답고 영향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4. 몽고메리가 근무한 우체국
몽고메리의 우체국에는 빨간 머리 앤의 중요한 사건들을 그림으로 전시해 놓았고,
생각보다 많은 중요한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듯한 스무 명 이상의 여자들이 코치에서 내렸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인챈트 북클럽(Enchant Bookclub)이란다.
멤버 구성은 여자들만이고 책을 선정해서 읽다가 그 책의 장소로
책여행을 다니는 독서 클럽이란다.
그들 중 한국인도 있을까 했지만 한 명도 없었고,
유일한 아시아인으로는 일본인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역시 일본인은 없는 곳이 없구나...
다니는 내내 날씨가 정말 환상이었다.
일기예보로는 조금 쌀쌀할 거라 들었는데
가벼운 니트만 입고 돌아다녀도 춥지도 덥지도 않고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뭉게구름에, 바람은 살랑거리고,
우리는 감탄과 웃음소리로 곳곳을 감상하며
행복하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오늘이 어제보다 더 좋아!"
우린 이 말을 매일 아침 외쳤다.
어제도 좋았는데 오늘은 더 좋다니!
우린 이곳에서 지내는 1분 1초가 아까웠지만
분주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다니고 싶은 곳 다니고,
지나다 궁금한 곳이 있으면 들어가고,
피곤하면 쉬고!
그래서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했나 보다.
몽고메리의 지옥 같은 삶이
역설적이게도 천국 같은 P.E.I. 여행을 만들어내다니!!!
작가는 죽어서까지도 우리에게 선물을 주는 존재인가 보다.
잊지 못할 진짜 여행!
천국 같던 P.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