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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너프 Nov 11. 2023

만 3세, T와 F중에 F 몰빵을 선택하다.

F 1000000 남아를 키우면 생기는 일

나는 MBTI에서 T와 F가 서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쓰지만 1, 2점 차이로 항상 아슬아슬하게 T가 이긴다. 그럴 때면 괜히 나 스스로 F 성향을 가진 T라고 합리화한다. 내가 가진 편견에 의해 T가 약간 못돼 보이기 때문이다. T이면서도 T의 냉정함에 종종 상처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지만 나는 T가 맞다. 슬퍼서 빵을 샀다고 하면, 미안하지만 무슨 빵인지가 궁금하다.


남편은 F가 높은 게 분명하다. 사실 그럴싸한 이유는 없다. 엄밀히 말하면 T는 아닌 것 같기 때문에 F라고 추정한다. 그렇게 오래 연애를 했음에도 그럴싸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연애 기간과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는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남편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으로 좋고 싫은 게 나뉜다. 내 입장에선 근거가 하나도 없어 (가끔) 신뢰가 안 간다. 그런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의 F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특이하게도 아들에게서 인 것 같다. T 51과 F 49의 엄마와 F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T는 아닌 것 같은 아빠가 만나서 아들은 F 몰빵이다. 100을 넘어 10000 정도 되는 듯하다.




나의 표정을 살피는 아이


내가 아들에게 가진 가장 큰 편견은 공감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굉장히 미안하지만 딸이 아니라서 내심 서운했다. 나는 딸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있지도 않은 딸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웃긴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아이가 들을까 봐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아이가 생각까지 읽으려나.


하지만 내 편견은 크게 뒤집혔다. 내가 그동안 봐왔던 많은 다큐에서 아들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공감력이 여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아들을 경험해 보니 공감력은 성별의 차이가 아니라 부모의 상호작용이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주 양육자의 상호작용.


남편의 직업 특성상 함께 육아를 할 수 없어서 내가 혼자 아이를 키웠다. 다행히 친정의 도움을 (매우) 많이 받았는데, 그 덕에 나는 아이를 겨우 키워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환경은 우리 아이가 자라기에 매우 좋았다. 내가 없어도 자는 시간을 빼고 모든 시간을 상호작용했다. 더군다나 (나를 포함해서) 친정 식구들은 말이 정말 (매우) 많다. 그렇다고 시끄럽지 않은 환경에서 아이는 다양한 표정과 다양한 반응, 다양한 목소리를 보고 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자랐다. 타이밍을 놓쳐 기관경험도 없다. 그렇게 37개월, 아이는 정말 잘 자랐다.


나의 눈을 보고 나의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읽는다. 나의 목소리에서 내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내 눈빛에서 나의 마음을 읽는다. 가끔은 내가 아이와 있는 것인지 나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만큼 아이는 나와 한 몸인 것처럼 보고 느낀다.


나를 배려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도 한다. 오히려 말해도 좋고, 표현해도 좋다고 하는데도 아이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한다. 그럴 때면 괜히 마음이 아프다. 아직 표현할 준비가 안 된 거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계속 기다려주고 있다.



표현을 잘하는 아이


나는 하루에 10번 이상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잠들기 전에는 수면루틴처럼 아이와 하루를 마감하는 말을 나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이를 안거나 뽀뽀하지 않는다. 뽀뽀를 해도 되는지, 안아도 되는지 질문을 한다. 이런 질문은 아이 역시 다른 사람의 의사를 확인하게 했고, 명령보다는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고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는 그 어떤 대상이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 때 보다 기뻤다. 이 아이를 통해 내가 배우는 감격. 50cm였던 아이가 어느덧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니. 그만큼 감동적인 순간이 어딨 을까.


아이는 크면서 내가 사랑한다고 하는 만큼 나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엄마 사랑해."

"엄마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엄마 소중해."

"엄마가 아프면 나도 속상해."

"엄마 귀여워."

"엄마."


사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 뱉었다. 내가 하는 말을 한 텀 쉬고 내뱉었다. 마치 문장을 그대로 외워서 말하는 것처럼. 그 한 텀에 아이는 어떤 감정을 실었을까? 생각하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 문장을 자기도 하고 싶어서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아니어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이렇게 귀엽게 생각하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것, 아이가 커갈수록 느낀다. 밖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들도 대부분 나의 말투를 닮았다. 그럴수록 나는 나를 더 점검하고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슬퍼서 빵 샀어.


이모들은 조금 짓궂다. 그래서 슬퍼서 빵 샀다는 것을 몇 번이나 말했다. 오죽하면 아이가 "엄마, 나 슬퍼서 빵 사러 가고 싶어. 크로와상."이라고 말했겠는가.


아이는 슬퍼서 빵 샀다는 질문에 왜 슬픈지 궁금해했다. 심지어 눈시울이 빨개졌다. 이모들에게 슬픈 일이 있다는 것이 슬펐던 것이다. 솔직히 무슨 빵이냐고 물어볼 줄 알았다. 빵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오늘 또 슬픈 일이 생겼는데, (어이없게도) 나를 아프게 하고 나면 꼭 오열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는 실수로 나를 아프게 하고 (발로 차거나 머리로 박아버린다.) 나는 특별히 통증을 크게 느낀다. 그래서 한참 눈을 감고 있거나 웃지를 못한다. 내가 아프다고 하기도 전에 울어버리길래 아이가 우는 이유를 나름 분석해 봤다. 첫째, 나에게 혼날 것 같다. 둘째, 내가 정색하는 표정이 무섭다. 셋째, 내가 아픈 것이 속상하다. 첫 번째 이유가 제일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오열하면서 "엄마가 아프면 나도 속상해."라고 말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아니, 이제 만 3살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아이가 남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이의 성별이 딸이 아니라 서운하다는 말을 내뱉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 성별은 상관없어."라고 거짓이 섞인 진심을 말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주양육자의 마음과 태도로 성장한다. 더 좋은 마음과 태도를 가지도록 나를 돌보아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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