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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너프 Mar 22. 2024

누구에게나 어려운 사회생활

4세 쪼꼬미에게도 마찬가지

아이가 유치원에 간 지 3주가 다 되었다. 등원 2일 만에 미열이 나기 시작했고, 등원 3일째 콧물이 주룩주룩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3일마다 병원에 가는 중이다. 아이에게 감기가 옮아서 같이 병원 신세 중이다. 쓴 약을 언제까지 먹냐고 묻지만 대답해 줄 말이 없다. 나도 모르니까. 그저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약을 잘 먹으면 빨리 낫는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중이다.


아이의 유치원 적응은 쉽지 않은 듯하다. 그럴 법도 한 게 가정보육을 42개월이나 했다. 원해서 했던 가정보육은 아니었다. 남편의 직장 문제로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섣불리 친정집 어린이집을 신청할 수 없었다. 이사가 계속 미뤄지면서 나의 가정보육 기간은 점점 늘어났고, 이사 예정지에서도 바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와중 자리가 비어있는 어린이집에 운 좋게 들어가게 되었지만 선생님과 아이 적응 문제로 결국 10일도 못 보내고 퇴소를 하게 되었다. 한 차례 기관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아이는 유치원 역시 두려울 것이다. 또, 42개월간 엄마랑 제대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엄마 없는 세상은 어떤 마음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등원 이후 아이는 매일 울고 있다.


오늘의 울음은 조금 남달랐다. 아이는 좋아하는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어제부터 이미 정해진 일정이었다.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약을 먹기로 했고, 쓴 약이 먹기 싫다며 평소와 다른 짜증을 냈다. 그 와중에 먹던 홈런볼이 바람에 모조리 날아가고 밖에서 한 시간을 울었다. 차가운 사과가 먹고 싶다며 그늘에 앉아야 한다고 했다가,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가, 집에 간다고 했다가, 놀아야 한다고 했다. 잘 달래지던 울음이 오늘은 왜 그리도 길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질 때 즈음, 아이는 잠에 들었고 집에서 2시간이 넘게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서도 계속 물었다. 유치원이 언제 끝나는지, 밥은 언제 먹는지, 엄마는 언제 만나는지, 초등학교는 언제 가는지. 평소와 같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울었다. 아이는 억울하고 불안하고 무서워 보였다. 계속 같은 질문을 했고 계속 울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선생님께서 아이가 울어서 울지 말라고 한 소리 하셨나 보다. 아이의 울음이 강을 만들어 엄마와 만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 내가 3주간 만난 선생님은 엄하지 않고 상냥하신 분이라 분명 상냥하셨겠지만 내용이 아이에게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내용을 상상해 보면 아이의 눈물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해 주신 듯한데 엄마와의 분리불안이 해결되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와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엄청난 공포였던 것 같다. 귀엽고 마음이 아팠다.


유치원에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에서도 "몰라."라는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고, 무엇인가 시원하게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봇물 터지듯이 유치원에 대해 쏟아내는 말을 들어보면 선생님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노래 부르는 것도, 책 읽는 것도 너무 재미있는 듯하다. 하지만 딱 하나, 그곳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그 모든 것을 소용없게 만드는 것 같다.


겨우 달래진 아이는 화장실에 가서 쉬를 했다. 그리고 휴지가 네모모양으로 잘리지 않는다며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강박 성향이 있는 아이는 스트레스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안쓰러웠지만 항상 내가 쫓아다니며 휴지를 네모로 잘라줄 수 없을 테니, 아이에게 휴지가 꼭 네모모양으로 잘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벽에 튕겨 나는 탱탱볼 같은 내 말이지만, 담장을 넘어갈 때까지 반복했다. 그렇게 30분이 넘게 실랑이를 하고 아이는 울음에 지친 상태로 네모로 잘리지 않은 휴지로 쉬를 닦은 후 화장실에서 나왔다.


평소 감정 표현을 편안하게 허용하는 편이었기에 슬플 때는 울고 스스로 달래도록 알려줬다. 다만 유치원에서는 울음을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하고, 억지로 씩씩한 척해야 한다고 하니 혼란스러워하는 듯하다. 또 다른 친구들은 울지 않는데, 자신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참 속상한 듯하다. 아이가 오늘 하루종일 흘린 눈물을 보면서 3주간 울음을 참고, 보고 싶은 마음을 견디며 유치원에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애썼던 흔적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아이에게 모든 상황이 처음일 테니.


나도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좋으면서도 긴장됐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잠도 못 잤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아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심지어 몸까지 안 좋으니 더 힘들 것이다.


옛날 같았다면 아이의 떼쓰는 시간이 고통스러웠겠지만 이젠 인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울음은 이상 괴롭지 않다. 훈육이 두렵지 않다. 아이의 울음이 시작되면 '아이에게 지금 어려움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목소리 톤을 낮추고 아이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면 아이는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심으로 '네가 걱정돼.'라는 마음을 표현하면 아이는 저절로 나의 노크에 반응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는 계속 노크를 한다. 아이의 문이 열릴 때까지.


잠시 가정보육을 해야 하나 흔들렸지만, 이번엔 아이에게 잠재된 힘을 조금 믿어보기로 한다.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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