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는 어디서 나온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스스로를 돌아보면 된다. 그 아이는 바로 부모를 그대로 닮는다.
우리 아이는 감각에 정말 예민하다. 놀랍게도 나와 남편은 모두 감각에 예민하다. 그 종류가 다를 뿐. 그리고 그 서로 다른 종류들은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 가장 겹치지 않는 경우의 수를 선택하여 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줬다.
우선 촉감에 굉장히 민감하다. 무엇인가 묻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바로 닦아내야만 했다. 단단함은 괜찮지만 물컹한 느낌은 싫어하며 부드러운 것을 선호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것은 아주 쉽게 허용한다. 예를 들면 손으로 밥 먹기. 묻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어떤 음식들은 손으로 잘 집어 먹는다. 정말 그의 선호가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청각 역시 예민하다. 청각은 내가 참 예민한데 작은 소리를 잘 듣는다. 들으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잘~ 들리는 편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하는 소리를 쉽게 캐치했다. (그렇다고 소머즈처럼 듣지는 못한다.) 아들도 그런 듯하다. 타인의 대화를 유심히 듣는 것 같지 않지만 모두 듣고 있다.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작은 소음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역시 두드러진 특성이다.
미각은 말할 것도 없다. 맛뿐만 아니라 입 안에서 느껴지는 느낌도 중요한 듯하다. 좋아하는 맛이 아니면 절대 먹지 않고, 음식을 섞어서 먹는 것보다 따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음식을 비선호하는 것을 보니 아주 남편과 똑 닮았다.
우선 어떤 감각보다 촉감은 많이 노출을 해보고 싶었다. 근데 중요한 것은 나 역시 촉감 불편러였다는 것이다. 촉감에 불편한 내가 촉감놀이를 진행하는 것은 아주 고통이었다. 촉감놀이의 시간은 아이와 나의 살얼음판이었다. 결계가 쳐진 것 마냥 넘어갈 수 없도록 좁아터진 통 안에서 제한적인 촉감놀이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도 작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촉감놀이는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촉감놀이의 횟수와 비례하게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도 쌓였다. 그래서 촉감에 둔감한 내 동생에게 그 역할을 위임했다.
내 동생은 촉감놀이를 진심으로 즐겼다. 옷이 젖어도, 머리카락에 물감이 묻어도,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간에 아이와 진심으로 몰두했다. 정말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도전했다. 촉감놀이로 내 예민함을 줄여보기로.
원칙을 몇 가지 정했다.
첫째, 주변이 너무 오염되지 않도록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만큼 매트나 비닐을 준비한다. 그런 걸 준비할 수 없다면 꼭 놀이 트레이라도 준비한다.
둘째, 점차 촉감 접촉 영역을 늘려간다. 소재도 견딜 수 있는 것에서 점점 등급(?)을 올려본다.
셋째, 아이와의 소통을 통해 엄마의 한계를 알려준다.
그렇게 아이와 놀이 42개월째. 나의 촉감 영역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더불어 아이의 촉감 역시 매우!
엄청나게 인기 있는 수정토 촉감놀이를 하고 싶었지만 미세 플라스틱 문제로 더 이상 하지 않고 있었는데, 최근에 인스타그램에서 화이트펄로 촉감놀이 하는 것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어 바로 구매했다. 아이와 함께 식용색소로 물을 들이고, 음식을 만들고, 던지고, 밟고, 뿌렸다.
그렇게 2시간을 놀았다. (이 정도면 육아 꿀템인 듯하다.)
화이트펄을 물에 씻어 단 맛을 조금 제거했다. 식용색소로 물을 들였는데, 식용색소는 피부에도 물이 잘 들어서 소량 사용해야 하고, 물이 들어도 괜찮은 식기를 사용해야 한다. 보시다시피 비닐도 깔고 놀이 트레이까지 사용해서 최대한 제한했다..(ㅎㅎ)
아이는 정말 다행스럽게 물감 놀이를 좋아한다. 이번 촉감놀이도 완전 대 성공이었다. 매트에 다 쏟아버릴 때 비닐을 잘 깔았다는 생각을 했다. 떨어지는 소리도 예쁘고, 색깔도 예뻐서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정말, 정~말 행복한 촉감놀이였다.
(이걸 쓰다 보니 옷을 안 갈아입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주변이 끈적해졌을 뿐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