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피아노 학원, 독서논술, 중국어 과외 등 각양각색의 교육 상품들에 대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 모든 사교육은 끝내 '수능'이라는 저수지로 귀결된다. 수험생이 없는 가정은 "와우~ 그렇게나 많이? 부모들 등골 빠지겠네~" 놀라는 것에 그치겠지만, 중고생을 둔 가정이나 나 같은 초등학생을 둔 부모는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숫자에 숨이 막힌다. '지금껏 쏟아부은 돈도 많은데 앞으로 더 끌어내야 할 돈은 대체 얼마냐?'
그렇다. 수능은 한마디로 '돈 잡아먹는 귀신'이다. 초, 중, 고 한단계를 더해 갈수록, 특히 '수능대비'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부르는 돈의 숫자가 곱절이 되고, 고3 수험생이 있는 집이 잘 나가는 강사로부터 특강을 들을라치면 평소 숫자에 '0'이 하나 더 붙는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숨이 벅차오른다.
대한민국 가정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열을 올리고 있으니, 그래 다 좋다 치자. 그런데 왜 수능이라는 대학능력평가시험은 이토록 비싸만 가는 것인가?한 세대를 훌쩍 넘긴 했지만, 내가 수험생일 때도 과외열풍은 만만치않았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는 탄식이 새어나온다. 그런데 한편 뒤집어 생각해 보니 '내가 아는 학력고사와 지금의 수능은 달라도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껏해봐야 초등 고학년인 학부모가 대체 '수능'에 대해 얼마나 알 것인가?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되면 '나중에 그 때 되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무슨 벌써부터 호들갑인가?' 하면서 넷플릭스를 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알아야 할 것이라면 지금 먼저 알고 나면 한 해씩 넘어갈 때 마다 어떤 양상으로 변하는지 추이를 치켜볼 수 있잖아?' 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수능'이란 게 알고 싶다고 쉽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워낙 어렵기도하거니와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려면 '돈을 내라' 거나 수십 수백개의 '좋아요와 알림설정'을 눌러가며 눈이 빠지게 유튜브를 뒤져야 할 판이어서 모처럼 맘 먹은 '수능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접을 판이었다.
궁즉통이라 했던가. 바로 이 때, 나의 갈증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책을 만났다(나의 첫 책 제목이 <<질문을 던져라 책이 답한다>> 였는데, 제목 하는 멋들어지게 잘 지은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온라인 서점 서핑을 하다가 멋들어진 제목의 수능관련서를 만났으니 제목이 <수능 해킹>(창비) 이다.
제목에 이끌려 클릭을 했고, 책 소개와 출판사 서평 그리고 먼저 읽은 독자들의 서평을 찾으며 내 타는 갈증을 채워줄 한 모금의 차디찬 냉수 같은 책이란 걸 직감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대한민국 '입시판'을 움직이는 수능 해킹의 공식을 낱낱이 밝히다!"고 전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먼저 제목 <<수능 해킹>>이 무슨 뜻인지를 아는 게 좋다.
수능 해킹이란?
시험에서 출제원리를 추론해 문제풀이 방식을 일반화된 공식으로 제시하는 작업. 수업생들은 이런 접근법을 숙달함으로써 복잡한 문제를 손쉽게 풀 수 있고, 사교육 업계가 지난 10년간 해온 일이 바로 '수능 해킹'이다.
그렇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 수능 시스템을 낱낱히 파헤친 일종의 르뽀다. 의사이면서 실전모의고사의 원조인 문제집의 공저자이기도 한 문호진과 소설가이면서 국서 사설모의고사 비문학 영역의 출제자였던 단요가 대한민국 대학입시의 변화사 중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지문이 긴, 그러면서도 어쩌면 가장 의미없고 소용없는 문제를 잔뜩 쌓아놓은 시험문제임을 고발하고 있는 책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 했다. 자녀를 둔 이상 수능이라는 관문을 들어서려면 직접 수능을 보지 못할망정 '수능 시스템은 무엇이며, 시험문제는 어떤 형태이고,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수능공부의 메카라 불리는 대치동의 현주소는 무엇인지' 를 이야기한 이 책 한 권 정도는 '해부'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렇다. 이건 온전히 '대한민국 수능이 궁금한 부모를 위한 책'이다. 올해 6월에 출간한 덕에 유효기간(?)이 넉넉한 이 책은 마치 지문많고 비용이 많이 드는 수능시험지처럼 500 페이지가 넘고 가격도 23,000원에 달한다. '수능'자가 붙으면 늘 비싸단 것만 이해하면,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구매버튼을 클릭할 만한 책이다.
독자들은 여전히 이런 의문이 생긴다.
"아, 그러니까 '수능해킹'이 도대체 뭐냐고?"
이 책이 소개한 '수능해킹'은 이런 것이다.
"루빅스 큐브라는 퍼즐 장난감이 있습니다. 작은 정육면체 큐브를 3X3X3 형태로 붙여 큰 정육면체를 ㅁ나든 다음 각 면에 서로 다른 색을 칠한 겁니다. 큐브를 회전시켜서 색상을 뒤섞은 뒤 본 상태로 되돌리는 게 주된 놀이법이지요. 처음 큐브를 접한 사람이라면 한참을 애써야 해결의 실마리를 잡습니다만, 숙련자들이 원상복구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봐야 1분을 넘지 않습니다. 해결공식, 즉 퍼즐의 상태와 색 배합에 따른 행동 전략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고력이나 논리력 자체는 암기의 대상이 아닐지라도 논리 흐름과 접근법으 외우는 것은 가능합니다.
수능이 오지선다 객관식이라는 사실, 도입 당시에는 중구난방이었던 문제 유형들이 이제는 깔끔하게 정리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봅시다. 문제 유형이 표준화된다는 것은 시험이 시행착오를 거쳐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전형성과 예측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일종의 역공학(reverse engineering) 기업을 통해, 시험지로부터 출제원리를 추론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 재구성에 성공하면 접근 방식과 행동전략 자체를 일반화된 공식으로 제실할 수 있겠지요. 예컨대 어떤 비문학 지문의 소재가 '법이라면, '판례를 다루는 부분이 핵심이니 그 대목부터 우선 읽고 문제를 확인한 다음 나머지 정보를 파악하라'는 식의 지침을 제시하는 겁니다.
수험생들은 이런 지침을 숙달함으로써 복잡한 문제를 손쉽게 풀 수 있게 됩니다. 루빅스큐브 숙련자들이 눈감짝할 사이에 퍼즐을 해치우는 것처럼요.
앞으로 이런 작업을 수능 해킹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28~29쪽"
루빅스큐브 매니아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흩어진 색깔들을 눈으로 스윽 스캔하는 것으로 준비가 끝난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요란한 손놀림으로 단 몇 초 만에 색깔블록들을 완성시킨다. 이처럼 수능문제의 '왁꾸' 즉 구성 살피기에 익숙해지면 국어시험의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어떤 문제가 나온다 해도, 설령 내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문제를 만나도(이것이 수능의 기본 출제방식이라고 하더라마는) 몇 십초 안에 분석하고 바로 문제풀이를 해서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두 가지 마음이 생긴다. 하나는 '이게 무슨 장난같은 문제냐. 이게 수능문제란 말인가?' 하는 탄식이고, 다른 하나는 '오호~ 이런 식으로 숙달만 시키면 수능 고득점이 가능하단 말이지?' 하는 야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 뿐 아니다. 국어에서 가장 공부하기 힘들다는 '비문학' 역시 지문의 서술 방식이 규격화되어 있는데, 수험생들이 글의 구성에 일정한 스타일을 잘 파악하고, 이것을 패턴화해서 숙달시킨다면 점수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패턴'이란 껀 또 뭘까?이걸 알려면 이 책의 본문을 다시 살펴야 한다.
"이 패턴이란 무엇일까요?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만 핵심은 반복적인 서술입니다. A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데에 B라는 키워드가 사용되었다면 지문에서나 문항에서나 'A : B' 관계가 거듭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의어나 다의어를 사용하는 상황은 최대한 피합니다.
예컨대 "고대와 중세의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다른 관점들과 갈등 상태에 있었다"라는 문장에서는 '아이스톨레스주의 : 다른관점 : 갈등 상태' 라는 관계가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이후의 문장과 문단에서는 계속 '갈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이를 '충돌'이나 '대립'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 겁니다. 또한 문장들은 'A : B', 'B : C', 'C : D' 처럼 연속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며, 중간고리를 과도하게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유추 능력은 '이 문장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이 문장에서 저 문장으로 넘어가는 연결고리는 어디에 있나?'를 분간하는 데에만 필요하고, 도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뉘앙스를 읽는 데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수학 기호만큼이나 분절적인 개념과 앙상한 도식만이 남아서 행간을 읽지 않더라도 기계론적 접근만으로 파악 가능한 글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언어 센스가 부족한 학생이라 해도 반복 숙달을 통해 고득점을 거둘 수 있지요." 본문 40~41쪽
이쯤 읽고 나면 부모 입장이라면 '이건 뭐, 수능이 시험이 아니라 개판오분전!'이라고 비판을 쏟지 않을 수 없다. 나는 30년 전 학력고사가 '누가 더 구석구석 많이 외웠나?' 하는 메모리 싸움이었다면, 요즘 수능은 '큐브와 글 퍼즐을 누가 먼저 빨리 찾아내나' 하는 일종의 게임 배틀처럼 느껴졌다. 서로 비교하자면 '이게 더 낫다'고 우열을 가리기가 부끄러울 만큼 형편없지만, 과거의 학력고사는 지금처럼 '돈을 콸콸 쏟아붓는' 형국이 아니었기에 좀 더 낫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들 역시 이 같은 '수능문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데 그치지 않고, 스타강사를 위시로 한 학원시스템의 문제점과 함께 전국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인강의 장점 속에 숨은 수십 수백권의 '실전 모의고사' 교재비로 배를 불리는 학원과 스타 강사의 문제점, 아울러 SKY를 필두로 한 대학생과 재수생, 그리고 수능시스템에 익숙한 N수생들이 생산하는 실전 모의고사의 유통방식 등을 낱낱이 파헤치며 그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 세대 전의 학력고사도 매한가지였지만, 대학입학시험에 대한 비판은 늘 강력하지만 좀처럼 '혁신적이고 보다 발전적인 시스템'으로 변형시키지 못하는 것은 단 하나, '매년 수십만 명의 우리 자녀들이 이 시험에 제 인생을 걸 듯 매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 순간 '확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조금씩 변화를 유도하자니 제도에 발 맞춰 재빨리 변신하는 사교육 때문에 번번이 제 구실을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런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아이의 수능대비 '교육책'을 찾을 수 있었다. 1~2문제를 위한 1,500자의 지문을 소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교과서에서는 전혀 만나보지 못한 생전 처음보는 지문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책을 읽고, 되도록 빨리 읽으면서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아이가 수능을 볼 때는 또 어떤 '문제풀이 방식'이 고착화될 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많은 지문을 보다 빨리 읽고 이해해야 한다'는 최대공약수는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수능'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 속으로 '훅~' 하고 들어온 느낌이다. 당장 엄두는 나지 않지만 다시 한 번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수능 문제가 뭔지, 실전 모의고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떼돈을 버는 스타강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버는지 궁금하다면 구매버튼을 클릭할 만한 책이다.
'수능'이라는 한 단어를 시작으로 수능산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철저하게 분석하면서도 그 문제점과 대안을 조목조목 파헤치며 시종일관 독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놓은 책이다. 지금껏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은 건 엄두도 못낼 만큼 무시무시한 테제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독자로서 저자들의 용기와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더불어서 '주말 마다 전국민이 보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왜 이런 책을 안 다루는지 몰라?' 라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다. 2024년 올해의 책이 된다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훌륭한 책이다! -Richboy
덧붙여 -
2024년 수능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수.학.능.력.평.가'
과연 이름에 걸맞는 문제들이 출제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12년 아니, 그 이상을 이 시험을 위해 달려온 대한민국 수험생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를 바라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