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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는 쿠키 Oct 06. 2019

7.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이스라엘에서 귀국 한 지 6개월 즈음 지났을까? 2015년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영어 회화 과외로 용돈벌이나 하는 '취준생'으로 보냈다. 마침 좋은 기회로 그 해 여름 국내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발굴을 하는 프로젝트의 참여 제의로 3개월 동안 인턴을 할 기회가 생겼고, 이 과정 중 나는 난생처음 압박면접을 당했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Startup accelerator) 창업 아이디어나 아이템만 존재하는 단계의 신생 스타트업을 발굴해 업무공간 및 마케팅, 홍보 등 비핵심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단체를 말합니다. 스타트업에 초기 자금과 멘토링 등을 제공하는 단체이기도 하죠!


면접 본 시절 즈음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브레인 티저도 당하고 (?) 충격이 컸긴 해나보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스라엘에서 분쟁해결 중재 협상을 공부했다 하고, 컨설턴트 일을 조금 했다고 하고, 외교부랑 국방부에서 일을 했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하고 싶은 거예요?" 1:1로 진행되었던 인터뷰에 들어온 면접관의 질문은 예리했다. 그리고 차가웠다. 압도적인 분위기와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질문들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점점 입이 메말랐다. "음 저는.. 비즈니스 중재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면접이 끝난 후 건물 밖으로 나와서 나조차도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어본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고맙게도, 그만큼 충격을 준 그분의 지적이 인턴쉽 기간 내내 내 귓가에 맴돌았고, 나는 그분의 질문 덕에 진로 선택 갈림길에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진로를 '선택'을 할 수 있단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


구글 이미지 펌




인턴쉽 후 정규직이 잠정 (구두) 약속되었던 3개월 동안의 인턴쉽 기간 중, 나와 같은 처지의 인턴 동기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우리가 정말 이렇게 쉽게(?) 정규직이 되는 걸까?"라는 불안한 고민을 나누고, 이 고민 많은 대화는 점차 "정말 이 일이 재밌는가?"로 변화했다. 우리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양말을 팔고, 또 피크닉을 하며, 회사 선배님들과 치맥을 먹으며 고민을 나눴다. 이때 정말 불안 & 불안정했다는 기억이 크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일 자체가 나와는 맞지 않는 걸 느꼈다. 일 자체는 창의성을 요구하고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나랑 동기는 애견 사업을 굉장히 열심히 밀었고, 커피 관련 일을 열심히 발전시켜보려고 했던 기억이 크다) 기존의 사업들을 서포트하는 재밌는 일이었지만 난 나의 100%를 온전히 쏟고 있진 못한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 양말 팔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날도 커피를 홀짝이며 '무얼 팔아야 돈을 벌까'에 기반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넌 미사일 팔면 되겠다!'라는 동기의 말 한마디가 '무기 중개'라는 개념의 아이디어의 시작이 되었고 나는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비즈니스 중재'와 '안보'가 결합되는 완벽한 분야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당시 내 옆자리 사수분이 자칭 '밀리터리 덕후' 셨기도 했고 (아직도 모니터 배경화면의 전투기가 생각난다), 그 선배가 링크드인으로 본인의 군 후배? 동기? 분의 영국 방위산업 회사인 BAE Systems에 입사 소식을 옆자리에 앉은 나와 어떻게 공유하셔서 이로 인해 '아 이런 회사가 있구나'라는 또 한 번의 지식확장으로 당시의 내 작은 관심이 더 구체화되었던 것 같다. 후에 BAE Systems에 입사하신 분과 나는 업계 좋은 인연으로 종종 안부인사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로 틈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새로 생긴 나의 관심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또래 인턴들과도 나누고, 선배님들과도 나누고, 차장님들 부장님들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분들과 피크닉을 할 때에도 무기 중개업에 관심 있다는 내 이야기에, '잘 어울릴 것 같다'라는 의외의 말씀을 해주셔서 크게 격려받은 기억이 난다.


당시 피크닉에서 찍은 사진을 하드 드라이브에서 찾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당시 회사에 방위산업 계열사들이 많았기에 인턴쉽이 끝나고 그쪽으로 정규직 포지션에 지원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나를 처음 이곳으로 불러주신 분의 허락 (?)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업계 입문에 도전했다. 당시 1:1 면담에서 내 이야기를 들으시곤 흔쾌히 계열사 이동을 허락해주시며 내게 "의리도 있어 보이고"라고 하셨던 그분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그 "의리"에 감동받아 더욱 의욕이 생겼고 기세 등등하게 도전을 시작한 것 같다.


인사부의 대리님께서도 따로 시간 내주셔서 자기소개서도 봐주시고, 사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개 인턴의 당찬 포부를 그 누구도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고 도움 요청할 때마다 적극 성심 다해 도와주셨다.


그리고, 당연히 (?) 결과는 탈락이었다.


국내 대기업의 정규직 전환형 인턴쉽을 아쉽지만 인턴쉽만으로 마쳤다.


비록 회사 내에서 고작 3개월 인턴 따위가 계열사를 "골라" 정식 입사를 도전해본다는 무모한 도전은 당연하게도 (?) 이렇게 끝이 났지만, 인턴 심층 압박 면접을 통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인턴쉽 내내 다양한 일을 해봄으로써 적성에 맞는 일,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일, 앞으로 하기 싫은 일까지 알 수 있었다. 내 흥미를 구별할 수 있을 수 있던 건, 다 많은 일을 해본 덕이라고 생각한다.


드림 플러스 (Dream Plus)에서 만난 사람들, 그분들과 했던 모든 일들을 통해 나는 진짜 '꿈' (Dream)을 만나게 되었고, 일개 인턴 나부랭이의 '꿈'을 물심양면 열정적으로 '엑셀러레이팅' 시켜주신 그곳에 계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곳은 진정한 "Dream Plus"였어요.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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