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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운 May 11. 2024

[001] 우아하게 먹으면 맛이 없을까?

맛있게 먹는 먹방을 추구하자

맛집 탐방이 인기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 먹방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방송들이 성황중이다. 공중파에서도 먹방이 정식 프로그램으로 방영되고 있는데 형식이 다양하다. 대놓고 먹는 행위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패널들이 나와서 자기의 먹는 경험과 메뉴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외국인들이 등장해서 이른바 K Food를 홍보하는 듯한 프로그램도 다수다.


얼마 전에 국수 요리를 먹을 때 면을 끊어 먹어야 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온라인 상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면을 먹는 방법이 무슨 이야기거리냐고 할 수 있지만,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넘어가기엔 우리가 먹방에 쏟는 관심과 열풍이 대단함을 고려하면 이야기할 만한 소재가 되기에는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논란이 시작된 것은 이정재 배우가 면을 먹는 방법 때문이었다.

방송에서 이정재 배우와 같이 식사를 하던 이영자씨가 이정재 배우에게 면을 끊어서 먹느냐고 물었던 것이 다. 이정재 배우는 다른 출연자와 달리 면을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고 끊어서 먹었다. 연속해서 입에 우겨넣는 '면치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영자씨의 반응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전통적인 우리의 음식 예절에는 소리를 내서 먹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것과, 어떻게 먹든 개인의 자유인데 평가를 왜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주장을 정리하자면, 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 중에 하나가 면치기일 수 있는데 개인 취향이니 간섭할 일은 아니다라는 것이 첫 번째 주장이다. 반대 주장은 면치기를 함으로써 파생되는 부수적인 효과 때문에 면치기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면치기를 하면 '후루룩'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면을 그렇게 '흡입'하다 보면 면에 묻어 있는 소스나 국물이 밖으로 튀기 마련이다. 선조들은 이런 이유로 요란하게 먹는 방법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듯 하다. 나도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배웠다. 밥을 흘리는 것도 안 되지만 음식물을 씹을 때 쩝쩝거리거나 국물을 마실 때 후루룩 거리는 소리조차 내면 안 된다고 하셨다. 이 모든 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복이 달아나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사안인 '면치기가 옳은가'가 온라인 상에서 논쟁이 이루어질만큼 우리 사회가 열려 있다고 생각된다.


이쯤 되면 식사 예절에 관해 논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배웠던 식사예절이 고리타분한 것인지 아니면 계속해서 지켜 나가야 할 것인지, 바꿔야 한다면 어떤 부분을 바꿔야 하는지 등을 논의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예절이라는 것은 배려라는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절의 대상은 우선 '내'가 아니라 '타인'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식사 예절도 같이 식사하는 사람이나 내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남'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내가 맛있게 먹는 것보다 내가 뭘 먹는 모습이 '좋게' 보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렇게 보면 옛날부터 들어왔던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


어떤 모습이 '좋게' 먹는 모습일까? 아름다운 먹는 모습은 어떤 걸까? 왜 어른들은 쩝쩝거리지 말고 후루룩거리지 말고 음식을 먹으라고 하셨을까? 복이 달아나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않는다.  좀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앞에서 언급했지만 우선 음식이 여기저기 튀는 비위생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면을 후루룩거리면 면에 붙어 있는 음식이 주변으로 튈 수 있다. 음식을 쩝쩝거리고 씹으면 입에 있는 음식물이 밖으로 나올 수도 있고, 입 안에서 분쇄되는 음식물의 모습이 노출되어 비위가 상할 수 있다. 국을 후루룩하고 먹으면 다소 소란할 것이다. 밥을 먹는데 좀 시끄러운 게 뭐 대수냐고 하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는데, 요란한 식사시간을 좋아한다면 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복이 달아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주 합리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물들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모습을 보면 금방 이해된다. 하이에나나 사자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모습이 복스럽거나 맛있게 먹는다고 말할 수 없다. 여느 육식동물들의 먹는 모습은 마찬가지이다. 동물들은 급하게 먹고, 그러다 보니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떡 삼키는 경우가 많다. 두루미는 물고기를 잡으면 한 입에 삼키는데 새들이 보통 먹이를 그렇게 먹는다. 육식동물들은   씹을 때는 쩝쩝 정도가 아니라 우적우적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초식동물들은 육식동물들에 비해  먹는 모습이 봐줄만하다. 풀을 뜯는 동물들이 입을 벌리고 게걸스럽게 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나 말의 모습은 평화롭다. 복을 받을 정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육식동물들 보다는 봐줄만하다. 복이 달아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광경이다.


먹방에 관한 우리의 논란, 정확히 이정재가 면치기를 하지 않고 면을 먹은 것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이런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먹방을 하는 채널 많고 출연하는 사람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많이 먹거나 빨리 먹는데 보통 사람이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먹는 '섭취 능력'을 과시한다.


많은 유튜버들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다. 지금은 예능인이나 먹방 유튜버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예전에 운동선수였던 사람이 있는데, 그의 먹는 모습은 아름답다. 내 기준이긴 하지만 소리를 내지 않고 먹는데다, 음식을 입에 넣을 때도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조심스럽게 이용해서 입 안에 '잘' 넣는다. 먹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음식을 흘리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 고 난 자리도 깔끔할 것으로 추측된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얌전하게 먹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다. 굳이 맛있다고 표시를 하지 않아도 먹는 모습에서, 음식을 즐기는 모습에서 음식이 맛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많이, 빨리 먹는 대다수의 먹방 유튜버들은 음식이 맛있게 보이지 음식을 먹는 모습에서 맛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잘 씹지도 않고 삼키고,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밀어넣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고 감탄은 할 수 있지만, 저렇게 먹어서 어떻게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먹방이 생기면서 남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양한 이유로 먹방을 보기 때문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문화 현상으로서 우리 세대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면치기에 대한 논쟁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옳고 그름은 상대적이고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시적으로 먹는 것보다 음식을 즐기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우선 고려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맛있게' 먹는 모습아름답게 먹는 방법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게 먹는 것이 복 있게 먹는 것이고, 맛있게 먹는 것이고, 예절이 있게 먹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음식의 맛은 음식 자체에도 있지만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도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것이다. 동물에게 진수성찬을 줄 이유가 없는 것은 그들이 그 맛을 즐기고 이해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은 맛있게 먹어야 하지만 '교양있게' 먹어야 할 것 같다. 뭐가 교양이냐라 물음에 답을 하는 것은 책 한권으로도 모자랄 만큼 할 말이 많을 수 있지만, 적어도 어른들이 이야기했던 '복이 달아난다' 말을 듣지 않을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면치기를 하는 것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복이 달아나지 않을 면치기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먹방 전문가라면 반드시 도전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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