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로 Jul 29. 2022

나는 나르시시스트의 아내입니다. 03

나르시시스트와 산다는 것


동상이몽(同床異夢)
같은 자리에서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


평범한 유년기가 아니었던 탓에 부모나 형제도 없었던 나는 남편과 시댁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소속감을 느꼈다. 그다지 타인에게 관심도 없었던 내가 들뜨고 기뻤었다.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며 함께하는 식사자리도 긴장되었지만 설렜다. 불편하지만 안정된 기이한 형태였다. 동화처럼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이 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불행은 어쩌면 사소하게 시작되어 삶에 스며드는데도 알아보기 힘들다. 나르시시스트가 고작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인 줄 알았던 나는 점점 그들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나는 모든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남편과 시댁으로 두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을 때에도 내가 좋아서 시댁을 찾고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라 했다. 물론 진심으로 기뻤지만 행복을 느낄 새도 없이 남편은 작은 일로 나를 점차 괴롭히기 시작했다.


“여보, 정장 사야 하지 않아? 남자 정장은 보통 어디서 사지? 면접 때 산거 어디서 샀어?”
“하… 그거 내 친구랑 가서 샀다고 했잖아! 의심하는 거야? 그딴 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어?”
“이제 합쳤으니까 가계부를 쓸까? 그러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너 지금 나한테 돈 얘기하는 거야? 네 돈, 내 돈 나누잔 거야? 나 무시하냐? 그 돈 아껴서 뭐 할 건데. 어차피 내가 많이 벌 거야. 그런 푼돈 가지고…어휴”
“오늘은 좀 피곤하네. 그래도 집안일 다 해놨어. 잘했지?”
“누가 하라고 했냐? 그렇게 힘들 거면 하지 마. 내가 할 테니 생색내지 마.”


대화를 살펴보면 남편의 공격성이 강한 방어기제가 보인다. 남편은 일상 대화에서도 자주 화를 냈으며 윽박지르고 비속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하여 화를 내는 남편을 보면 그의 내면의 바탕을 생각해볼 여력이 없었다. 남편의 억양과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반박했다. 그럴수록 남편은 더 화가 났고 우리 사이는 극도록 나빠졌다. 나는 나대로 억울했었는데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공부한 지금은 남편의 말에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내가 억울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말을 꺼낼수록 나르시시스트가 원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말속에서 꼬투리를 잡힌 순간 그는 더 기고만장해진다.


“너 같은 또라이랑 결혼하는 게 아니었어. 진짜 무섭다. 표정 봐. 진짜 싫다. 저 표독스러운 표정. 꺼져, 또 질질 짜냐? 피해자인 척하지 마. 꼴 보기 싫으니까.”


나와 같이 나르시시스트의 말에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들이 내뱉는 말엔 그 어떠한 독이 없으며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러니 상처받지 마라.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투사이다. 투사란 자신의 부정적 감정 또는 충동을 타인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의 약점을 파악하고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상대에게 전가하며 자신의 자아를 방어한다. 그들 자아상은 훼손되어 있으며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 이러한 만행을 하는 것이다. 상대의 기분을 조정하면서 전능함을 느낀 나르시시스트는 만족감과 안정감을 얻게 된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너는 무능해.”라고 말하더라도 그 말은 진실이 아니며 그저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여기에 휘둘리게 된다면 그들의 뜻대로 되는 것이다. 어렵지만 나르시시스트의 말 보다 자신을 믿으며 용기 냈으면 좋겠다. 나도 처음엔 분노에 휩싸여 울며 소리 지르고 그의 말에 반박하였고 결국 돌아오는 건 그에게 나의 무능한 존재임을 확인받는 일이었다.


“난 이제 너랑 대화 안 해. 울고 소리 지르는데 무슨 대화를 해. 넌 나한테 그럴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이니까 너 알아서 해.”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덤덤히 말하고는 핸드폰을 본다. 견디기 힘든 독설을 던지고 아무 일 없는 듯이 행동하는 남편을 보며 더욱 좌절감을 느꼈다. 남편의 말을 곱씹으며 나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웠다. 어떻게 이 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으려 고민할 때 그는 마지막 칼날을 꽂는다.


“그래서 이혼이라도 할 거야? 원하면 해줄게. 난 상관없어.”


절망이었다. 이 지옥에서 괴로운 건 나뿐이었고 지옥문을 열고 나갈 기회를 선뜻 주었음에도 그 결정이 더 괴로웠다. 어떡해서든 갈등을 해소하고 행복하고 싶었던 것인데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이혼이라는 카드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남편은 이혼하기 싫으면 자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나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못하자 남편은 나를 용서한 것 마냥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가와 안으며 말했다.


“봐, 넌 나 없으면 안 되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나르시시스트의 아내입니다. 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