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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Jul 05. 2023

[상념] 고장난 체온계

대조군이 필요해,

열이 난다,

목이 아리까리하고 근육통이 살짝 있길래 좀 피곤했나보다 했는데, 열이 난다. 

타이레놀 먹고 좀 있음 낫겠거니 하고 몇 도인지 궁금해서 로켓 배송으로 저렴한 체온계를 주문했다. 


다음날 아침, 

39.9도.

응?

다시 쟀다. 38.7도. 

응?

다시 쟀다. 38.0도. 

응?

엉망 진창이다. 

체온계가 체온계로서의 기능이 없다. 

체온계로 가장 유명한 브라운 체온계를 사지 않고 반값도 안 하는 국산 제품을 샀더니 낭패다. 


클리닉에 가서 쟀다. 

37.8도 

그래, 이 정도면 합리적이지. 


밤에 누웠다가 삭신이 쑤셔서 결국 브라운 체온계를 주문했다. 

네 녀석은 정확하겠지란 생각에 방금 뜯자마자 쟀다. 

38.6도. 응? 

길 가는 아무 사람 귀에 꽂아보고 이 체온계가 정상인지 아닌지 알아보고 싶다. 


정확성이 생명인 의료용 전자기기가 측정하는 사람이나 기계에 따라 달라지다니, 난 무엇을 믿어야 하는 걸까 

그냥 운이 없었던걸까, 




모든 SNS에서 생일 정보를 지웠다. 

카톡에서 뜨는 걸 보고 축하해주는 이들이 참 고맙긴 했지만 나 혼자 주고 안 받기를 하고자 했다. 

그랬더니, 카카오 선물하기로 선물을 준 건 3명이었다. 

모르고 지나간 이들에게 전혀 섭섭하지 않다. 

모든게 나의 선택이니, 

막 생일이라고 소리치고 싶다가도 불혹에 뭔 짓인가 싶어 입술을 훔친다. 

나는 그렇다, 

받는게 너무 어색하다. 주는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기질인지 사회화된건지 모르겠지만 때때로는 숨고만 싶고, 축하한다는 말에 멋쩍은 듯 어색하게 미소를 띄는게 묘하게 편하지 않다. 

20년지기 학교 동기들끼리 누군가의 생일날이면 그 날은 '생일 축하해'란 메세지로 채팅창이 뒤덮인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축하를 할까, 모두가 이승을 떠나고 그 방의 인원이 2명이 될 때까지일까? 



생일 전날부터 아팠다. 

생일날과 오늘 피크를 찍고 있다. 

온갖 이유와 의미를 혼자 부여하고 있다. 

과연 내가 40번의 생일 중 아팠던건 몇 번이나 될까? 처음일까? 

폭우가 쏟아지는 어제, 언제나 흐릿한 장마시즌이었던 나의 생일은 추적추적 끈적끈적이란 단어들이 찰떡 같기만 했다. 


사실 모든게 독립적인거다. 

독립, 


이렇게 또 한 번 맞이한 독립기념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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