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성년』을 보고
5월 8일, 영화 『미성년』을 봤다.
이입(移入)
그간 여성들은 남성 주연으로 가득한 영화를 보며 어디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 미성년의 소재는 뻔하고 식상한 불륜이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요소들을 변주해 새롭고 신선한 영화가 됐다. 불륜이라는 사건은 그저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도구로만 작동하고 빠진다.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묘사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화자는 여성 넷이다. 불륜을 저지른 남성 캐릭터의 구구절절한 변명은 극히 일부로, 그마저 코믹으로 소비하고 만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네 인물의 감정과 의지에 집중한다. 각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있어, 관객은 어디에든 이입할 수 있다. 학원을 가려던 주리가 내리는 눈을 보고 멈춘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주리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학원 빠지고 엄마랑 저녁 먹고 싶어.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라고 말한다. 주리는 엄마가 몰랐으면 해서, 가족으로 있고 싶어서 아빠를 쫓아왔다. 그 애써왔던 마음을 알기에, "학원은 가야지"했던 주리가 별안간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한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외에 자신과 주리를 묵묵히 지탱하던 영주에 공감하는 이가 있을 것이고, 책임감 없는 남자들에 치여 한 번쯤은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던 미희에 공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 미성년은 어느 자리에서든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유대(紐帶)
주리는 아빠의 외도 사실을 엄마만은 몰랐으면 한다. 영주는 주리가 대원의 외도를 알게 된 것이 속상하다. (후에 윤아에게 주리한테 네가 말했니? 묻는 장면, 성당에서 제 딸이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주리가 알게 됐단 것과 그토록 내버려둔 대원에 대한 분함을 느꼈다.) 윤아는 대원이 책임질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엄마가 걱정이다. 이처럼 영화는 각자 자신의 엄마를, 딸을 걱정하고 지키려는 인물들로 시작했다. 이는 인물들이 직접 만나게 되면서 점점 변화하는데, 그 첫 전환점은 각 모녀의 자리바꿈이다. 주리는 대원을 잡으려 병원에 매복하다, 미희와 병원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윤아는 영주가 병원비를 냈다는 사실을 알고 돈을 갚으려 영주를 찾아간다. 이후 두 아이가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질 때, 윤아가 주리에게 너희 엄마 잘 챙기라 말한다. 그러자 주리는 너희 엄마나 신경 써,라고 답한다. 이 지점에서 아이들이 걱정하는 대상이 각자의 엄마에서 서로의 엄마로 확장된다. (영주 역시 윤아에게 중요한 시기야, 강인해져야 돼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를수록 유대의 방향은 서로로 향한다. 주리와 윤아는 사라진 동생을 찾기 위해 둘이 고군분투한다. 학업이 중요하다던 주리는 윤아의 손을 잡고 함께 학교를 나선다. 또 한편에선 영주가 죽을 싸들고 미희에게로 간다.
단순(單純)
가장 돋보이는 관계는 단연 주리와 윤아다. 둘은 가장 격렬하게 대립했으면서도, 학교 유리창까지 깨부쉈던 격한 몸싸움을 끝으로 더 이상 다투지 않는다. 그 싸움으로 모든 갈등을 해갈한 것처럼 말이다. 싸운 뒤 담임 선생님이 주리에게 윤아 험담을 하자, 주리는 윤아 편을 들며 발끈하기까지 한다. 둘이 함께 영화 엔딩까지 가는 과정도 그렇다. 당연하고 단순한 의지를 갖고 달려간다. "내 동생이니까." 어쩌면 사람은 나이 들수록 더 답이 없어지는지도 모르겠다. 할 말 있으면 하고, 응어리가 있으면 풀고, 책임질 건 책임지고. 두 미성년의 그 단순하고 빠른 동력이 성년들과 대비되어 다가왔다.
겸손(謙遜)
네 인물의 관계에 문제 원인인 대원(남성)이 낄 자리는 없다. 간간이 가장 한심한 캐릭터로 나왔다. 엔딩크레딧에선 배우들의 이름이 먼저 나온 뒤에 감독 이름이 나온다. 그 자의식 과잉 없는 겸손함이 인상 깊게 남았다. 김윤석 감독은 대부분 영화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온 배우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일으킨 젠더 논란에 충실히 피드백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여러 차례 걸쳐 남긴 사과문을 전해 전해 봐왔다. 그래서일까, 미성년이 보여주는 인물 설정과 연출이 엄청난 의외이진 않았다. 영화 너무 잘 봤다. 섬세한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