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글루 Oct 23. 2016

여자의 연애는 크레이프 케잌이다 1

여자의 마음에서 쌓여가는 것들

  여자는 연애를 하면서 두 종류의 크레이프 케잌을 만든다. 하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고, 하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나도 여자지만 여자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생물이라, 예측이 불가능하다. 같은 말이라도 어느 날엔 기분이 좋고 어느 날엔 짜증이 나고, 같은 잘못을 해도 어느 날엔 별다른 반응 없이 넘어가고, 어느 날엔 분노에 가득찬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설사 그 남자와 사귀게 되었다해도 단박에 그 사람을 둘도 없이 사랑하게 될만큼 여자는 본성이 간단명료한 생물이 아니다. 흔히 미디어가 첫눈에 반하는 쪽,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는 쪽을 남자로 그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여자의 사랑은 심사숙고 끝에 정해지고 어지간해선 첫눈에 (외모와 분위기에 끌릴 순 있어도) 그 사람의 인격까지 모두 품을 정도로 정신없이 반하지도 않는다. (여자에게서 진심이 우러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당신은 축복받은 남자임을 명심할 것.)


  이 대목에서 크레이프 케잌이 등장한다. 여자는 남자와 만나면서 그 사람의 좋은 점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신중하게 혹은 화끈하게 느낌따라, 매번 만남 혹은 연락 때마다 발견하고 알아가고 겪어가며 정성스레 케이크를 쌓아간다.


  이런 식이다. '가을밤이라 쌀쌀하니 밖에 춥지 않냐고 물어봐주다니 섬세해.' '오늘따라 후드티랑 청바지가 잘어울리는데 스타일리시해.' '내가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는 걸 알고 달달한 음료수를 선물해주다니 자상해.' '떡볶이 떡 하나도 잘 못집는다니 귀여워.' '바깥쪽으로 슬며시 나가서 걸어주다니 듬직해.' 이렇게 쌓이는 것이다, 그 좋아함의 케이크란 건. '섬세해' '자상해' '듬직해'처럼 행위가 결여된 감정 그 자체를 느끼는 법은 좀체 없다. 죄다 앞에 '~해서,' '~하니까'가 들어간다. 심지어 잘생긴 것조차도 '키가 커서, 속눈썹이 길어서, 코가 쭉 뻗어서, 피부가 하얘서 또는 까무잡잡해서.... 잘생겼어' 등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아마 예쁘면 예쁜 것이고 몸매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착하면 착한 것이지 그걸 분절화하거나 이유를 같다붙이는 것엔 능숙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케이크가 착착 쌓여가면 세간에서 케이크라고 불릴만한 모양이 나올 때즈음 해서 여자는 자신이 그 남자를 좋아함(또는 사랑함)을 스스로 충분히 느끼고 남자에게 표현해줄 수 있게 된다. 그 케이크 쌓이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상대마다 달라서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어쨌든 연애를 하고있는 혹은 할지말지 고민하고 있는 여자라면 누구나 앃고 있기 마련이다.


  그럼 반대로 좀 위험한 케이크 이야길 해보자. 사실 좋아하는 케이크 쌓는거야 여자든 남자든 비슷하다. 남자라고 한눈에 반하는 사랑 뿐이겠는가.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마음 쌓는 건 다 똑같다. 그러나 미움과 서운함이 쌓이는 케이크는 (나의 경험상) 조금 다른 것 같다. '왜 싸울 때 옛날 얘기까지 꺼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인류 최고(最古)의 논제를 타개할만한 [미운 크레이프 케이크]이야기를 다음 글에서 해보도록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누구와 사랑을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