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설계를 앞두고 정식 인턴사원을 뽑았다. 연대 건축과 5학년 학생이었다. 포트폴리오가 특별히 뛰어나지 않았지만, 일상 건축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했기에 사무실과 결이 맞을듯도 싶었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는 얼마되지도 않아 시간을 변경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살짝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면접을 보았다. 적극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어필을 했고, 마지막 학기 중에도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삼개월을 확실히 일할 수 있는지를 재확인하고, 함께 일하기로 결정을 했다.
비교적 장기간이기에 새로 가구를 구입하고, 컴퓨터도 장기 렌탈을 해주었다.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정부 지원 사업에 지원해 지난한 과정을 거쳤고, 인턴의 4대보험과 급여 정리를 위해 별도로 세무사를 고용하고 선지급을 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1,2학년 때부터 기본적으로 하는 대지분석과 사례조차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고, 디자인 회의를 위한 랜더링도 저학년 수준이라 결국 기존 작업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며칠을 두고 보다 안되겠다 싶어, 직접 리서치를 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었다. 실시설계를 하는 다음 학기에 도움이 되라며 도서 탬플릿을 주고, 문서 작성법 및 자료 정리 방법도 알려주고,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내 사람으로 들이는 과정이라 생각했기에, 돈을 주면서 가르치는 것을 감수했다.
그런데 딱 7일을 일하고, 밤늦게 문자가 하나 띠리릭 왔다.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타나지 않았다. 그간 여러 명의 스탭을 써 보았지만 이렇게 무책임한 경우는 처음이었고, 5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왔지만 이처럼 기본도 안 갖춘 경우는 보지를 못했다. 황당함과 화를 다스리는데 이틀을 쓰고, 계약서를 정리하러 오라고 했다.
본인의 일방 계약 해지 통보로 인한 사무실을 손실을 사실관계로만 얘기했다. 기지급된 기백만원을 훌쩍 넘는 비용은 물론 정부 지원사업 미이행에 대한 패널티를 물고, 단기 인력 수급이 불가해 준비하던 현상설계까지 포기하기 된 상황이었다. 대답은 놀랍게도 자신이 알 바 아니며, 계약직이니 아무 때나 그만둬도 상관없으며, 1도 생산에 기여하지 않았어도 급여를 다 따져받는 것은 당연하며, 훈계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다른 사무실에서 일할 기회를 잃었으니 손해를 봤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변심'이라고 당당하게 써넣은 사직서를 받고, 계약 합의 해지서를 작성하고 내보냈다. 그리고 바로 입금을 해주었다. 유일하게 요구한 것은 다시는 나와 사무실을 입에 담지 말라는 것이었다. 스스로 더럽혀지는 기분이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알게 된 놀라운 점은 근로관계에서 사장이 약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근로계약법은 해고 당하는 근로자만을 보호하며, 직원의 무단 이탈에 대한 제재나 처벌은 전무했다. 직원이 사무실에 손해를 끼쳐도 배상받을 방도가 없었으며, 아무런 생산을 하지 않아도 임금과 기타 복지 사항은 이행되어야 했다.
스스로 깊은 트라우마가 되어 더 이상 직원을 뽑지 못하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업 의식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도리란 무엇인가. 책임이란 무엇인가.
한 인간으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책임을 다 하는 것, 돈의 무게를 제대로 아는 것, 스스로 배려받고 싶은만큼 상대를 존중하는 것, 신의를 지키는 것. 기본이라고 생각해 온 것들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경험하며, 인간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잡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인간인가.
2020.08.08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