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갑자기요?
초등학생 때의 나는 무지 연습장 하나만 있으면 하루 종일 그림 그리면서 나만의 세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아이였다. 200원에 한 권을 빌릴 수 있었던 시절, 친 오빠의 만화 대여 및 배송 서비스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빠 옆에서 수 많은 만화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만화가를 꿈꿨다. 그러던 어느 날 만화책 뒤에 3,500원이라는 가격을 보고 ‘아, 이렇게 책을 내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만화가의 꿈을 접었다. 어린 나이치고는 꽤나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한 샘이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나는 최지우 같은 배우가 되겠어! 하며 또 연습장에 레드카펫에 올라서서 드레스입고 우아하게 인사를 하는 내 모습을 그렸다. 단순히 영어 연극 무대에 한 번 오른 후에 연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나서 생각했던 꿈이었다. 내 친구는 가수, 나는 배우를 꿈꾸며 언젠가 연예계에 진출하자고 했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니 빼어난 미모들을 자랑하는 연예계에 가기에는 부족하다 싶어서 또 현실적인 이유로 다시 접었다.
중학교 3학년, 음악 밴드부 활동에서 피아노와 보컬을 했다. 곧바로 노래 부르는 것에 재미를 들린 나는 엄마에게 부탁해서 성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마침 엄마 성가대의 지휘자님은 성악 전공자셔서 미사가 끝난 뒤 성당의 한 교리실에서 노래를 불러 나의 실력을 가늠하기도 했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도 꽤나 들었다. 이쯤 되니 재능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퇴근한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저 노래 하고 싶어요.’라고 얘기했다. 아버지는 ‘음악은 돈이 많이 든다.’고 하셨고, 착한 딸인 나는 ‘네! 알겠습니다.’하고 세 번째 꿈을 접었다.
일반 회사원 말고는 모든 좋은 꿈이란 꿈은 다 꾸던 시절이었다. 특히 나의 꿈들은 공부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나는 밴드부 활동을 하며, 태권도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남들은 우수한 대학교를 꿈 꾸며 공부하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 모르는 채 현실적이지만 나에게 어울리는 꿈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덕분에 나의 성적은 중하위권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는지, 중간 고사 전 날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했을까 후회하며 펑펑 울다가 다음 날 부은 눈으로 시험을 보러 갔다. 결과는 참담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너 광고해보는 건 어때?”라고 말했다.
“왠 광고?”
“너는 음악도, 미술도, 방송도 좋아하잖아.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호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처음으로 광고라는 직업에 대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TV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기만 했지, 그 걸 뒤에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 적은 없었다. 그냥 뚝딱하고 만들어 진 줄 알았지. 그런데 새로 알게된 광고의 세계는 다양했다. 광고주가 있고 기획자, 그리고 제작자가 있다. 광고주의 요청으로 광고를 기획하는 사람, 문구를 쓰는 사람, 촬영하는 사람 등등등 정말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한 편의 광고들이 만들어지고 드라마와 예능 사이를 가득 메꾸고 있었던 것이다. 신세계였다.
특히 광고를 기획하는 일은 내가 여태껏 꿈 꾸고 포기했던 직업들이 응축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편의 광고가 나오기 위해서는 배우의 연기, 분위기를 만드는 음악, 잘 전달하기 위한 미술적 장치 등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모두 15초 영상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세계를 왜 진작에 몰랐을까 싶었다. 새로 알게 된 이 분야는 나에게 딱 맞는 직업 같았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현실적이면서도 하고 싶은 직업이 생겼다. 광고를 배울 수 있는 대학교에 가는 게 목표가 되었다. 제일 먼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광고홍보학과를 검색한 뒤, 그 중 가장 좋은 대학교의 이름을 내 방 한 가운데에 검정색 테이프로 붙여놨다. 매일 내 방에 들어갈 때마다 그 대학교를 꿈꾸며 공부하자는 마음에.
광고홍보학과를 가는 것, 나의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도전이었다.
내 성적은 이미 중하위권이었는데 가고자 하는 학교는 상위권 성적을 받아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공부 해야 하는 이유를 찾으니 기분이 좋았다. 캄캄한 숲 속에서 강력하고 곧은 빛을 내는 헤드라이트를 차고 걷는 기분 이랄까. 마침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해진 친구는 무려 전교에서 10등안에 드는 우등생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 아이는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고 하교 할때는 항상 그 날의 교과서들을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나도 그 친구가 공부할 때마다 함께 공부했고 자연스럽게 성적은 조금씩 나아졌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지만, 우울감 보다는 1년 뒤면 내가 꿈 꾸던 대학교에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내가 가야 할 곳은 너무 명확했으니까. 중학교, 고등학교는 그저 내 동네에서 배치되는 곳으로 갔다면 처음으로 나의 노력으로 내가 갈 학교를 정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었다. 시험 준비를 할 때면 하늘색 펜을 여러 개 사서 교과서에 5번씩 밑줄을 그으며 읽거나, 무지 연습장에 몇 번씩 옮겨 적으며 달달 외웠다. 우등생이 아닌 일반 학생들은 10시까지밖에 할 수 없었던 야간 자습실에서 몰래 11시까지 버티며 공부하다가 집에 오기도 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집중이 안 될 때면 조명을 끄고 몰래 바닥에 누워서 음악 2곡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다가 노래가 끝나면 번쩍 일어났다. 다행히 이런 노력에 성적도 쑥쑥 자라서 고3때는 반에서 5등을 했다. 고1때를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다만.. 수학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국어, 영어와는 달리 내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수학의 세계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대학교는 수리영역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 학교였다. 따로 과외까지 받아 봤지만 수학의 공식은 영어 단어보다 어려웠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나는 수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했다.
결국 내 선택은 국내 1위 광고홍보학과가 아닌, 내 성적에 맞으면서 광고홍보학부가 있는 학교로 가는 것이었다. 그래, 애초부터 나의 목표는 광고홍보학과에 가는 것이었으니까. 어디서든 내가 꿈 꾸던 공부를 할 수 있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수시에 합격한 날, 나는 2년간 내 방의 벽지가 되어준 내가 가지 못한 대학교의 이름을 떼어냈다. 조금 슬픈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두꺼운 검정 테이프로 A.E. ROM이라고 붙였다. (Account Executive = 광고 기획자를 뜻한다.) 어떤 길로 가든 나의 목표를 좋은 광고인이 되는 거였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1학년, 툭 하고 던진 친구의 제안에 나는 2년간 광고홍보학과 만을 생각하며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며 방황하던 때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꿈꾸며 공부할 때의 내 모습은 달랐다. 너무 공부를 안 해서 다음 날 시험 걱정에 울던 1학년은 더 이상 없었다.
끝내 내가 가고 싶은 대학교는 갈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광고의 길에 들어왔다.
시작이 다르면 어때. 먼 훗날 나는 좋은 광고 기획자가 될 거야 기대하며 대학교 입학만을 기다렸다.